영국정원, 아는 만큼 보입니다!
[영국 정원 산책] 01 – 가든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연재를 시작하며
영국 사람들의 정원 사랑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슈퍼마켓만큼이나 많은 가든 센터garden centre와 봄에서 늦여름까지 수도 없이 열리는 플라워 쇼, 주말이면 테마 파크를 찾듯 아이 손을 잡고 정원으로 나들이를 가는 사람들. 이게 내가 6년 째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또 정원 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본 영국인들의 진짜 모습이다. 내가 진정으로 부럽고 그리고 아쉬운 것은 영국인들이 누리고 있는 이 정원 문화가 얼마나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이고, 더불어 우리에게는 이런 문화가 아직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정원 문화를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에서 영국의 정원문화를 소개하는 책 <영국정원산책>을 출간했고 더불어 이번 연재도 결심하게 됐다. 영국문화원 블로그 연재를 통해 정원 문화, 또 가든 디자인의 세계를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첫 회의 연재는 다소 딱딱한 내용이지만 가든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보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든 디자인이 무엇이냐고 묻곤 하는데, 몇 줄의 글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큰 주제이지만 그 근본을 우선 철학적으로 접근해보고, 다음 회에는 좀 더 쉽게 다양한 정원의 이야기를 풀어볼 예정이다.
가든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닫힌 공간, 정원의 시작Enclosure garden
정원의 정의는 ‘담장으로 둘러진 공간 안에 인간이 기르고 싶은 식물을 기르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 그런가 하면 정원을 뜻하는 다양한 언어의 표현 garten, jardin, hortun, paradise, park, hof 등의 모든 용어 역시도 ‘닫혀진 공간fenced’라는 말이다. 동양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원을 뜻하는 상형 문자인 원(園)에도 큰 틀의 입구가 바로 담으로 둘러 싸여진 공간을 의미한다. 때문에 정원은 닫힌 공간, 거기에서부터 시작이 됐다. 정원이 혹시 ‘자연이 함께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왜냐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닫힘, 막음은 결국은 자연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차단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연이 함께 하는 정원이라는 의미와는 사뭇 다르다.
정원 디자인의 요소
정원에 디자인 개념이 언제부터 도입이 됐을까를 묻는 것은 조금은 어리석을 듯 하다. 신석기, 청도기 시대의 조상도 동굴에 벽화 한 점을 그리면서 자신들의 미적 감각을 발휘했을 정도니 정원을 만들기 시작할 때, 아니 울타리를 치는 그 첫 시작에서부터 인류는 정원예술을 시작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정원 디자인을 하는데 우리가 가장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무엇일까? 영국의 조경연구가인 톰 터너Tom Turner는 정원의 디자인에 있어 주요 개념을 크게 네 가지로 봤다. 왜 정원을 만드는가(why), 어디에 만들 것인가(where)? 어떤 타입의 정원을 만들 것인가(what), 어떻게 만들 것인가(how). 그의 이 다섯 가지 개념은 실질적으로 우리가 정원을 만들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들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왜는 ‘목적’이 될 것이고, 어디에는 ‘장소’, 그리고 어떤 타입은 ‘형태’를 말하고 어떻게는 ‘예술감각’으로 표현을 바꾸어도 된다. 그런데 그는 이 네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할 때 여섯 가지 요소를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첫 번째 어떤 땅을 가졌는가(Land form)? 정원에 반드시 필요한 물의 공급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water)? 수직으로 서게 되는 구조물(vertical structure)과 이와 상반된 것으로 바닥과 통로를 의미하는 수평의 구조물(horizontal structure),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씨(climate). 이렇게 여섯 가지 요소를 조화롭게 구성했을 때 우리가 기능적으로 쓸모 있게, 또 보기에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원 디자인의 목적object
사실 단순히 식물을 기르는 공간으로만 정원을 본다면 농사를 짓는 곳도 정원이라고 불러야 맞다. 그러나 농사를 짓는 곳, 혹은 텃밭 자체가 정원이 되지 않는 이유는 거기에는 디자인의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정원 디자인이라는 것을 배운 적도 없고 그게 무엇인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해도 자신의 정원에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에도 고민을 하게 된다. 어떤 나무가 좋을까, 어디에 심을까. 그러면서 이 순간 나무의 크기, 잎의 형태, 꽃의 색깔, 그리고 건물과의 조화를 생각하게 되는데 실은 바로 이것이 정원 디자인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단순히 식물을 기르는 공간으로 정원을 만들지 않고 여기에 디자인이라는 행위를 넣게 되는 것일까? 이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정원 디자인에만 국한하지 않고 우리가 왜 모든 것에서 대체 디자인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답이 될 듯 하다. 흔히 건축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BC 27년 경의 고대 로마시대의 건축가였던 비투르비우스Vitruvius는 디자인의 목적을 ‘견고성firmitas’와 ‘편리성utilitas’ 그리고 ‘아름다움venustas’을 갖기 위해서라고 봤다. 뭔가를 만들 때 더욱 견고해지고, 또 편리하게 쓸 수 있게 그리고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 디자인이라는 행위를 한다는 말인 셈이다. 바로 이 세 가지의 목적은 그대로 정원 디자인에도 적용이 된다. 정원은 건축과 마찬가지로 무너지지 않고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는 견고성이 있어야 하고, 또한 사람이 사용하기 좋고 즐길 수 있도록 편리해야 하고 더불어 무엇보다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는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정원 디자인을 한다.
장소Location
‘장소’는 정원 디자인에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다. 일반적으로 우리 말의 ‘조경’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Landscape architecture인데 구성된 단어를 보면 건축이라는 말 앞에 ‘경치’가 있다. 즉, 풍광, 경치, 혹은 대지를 건축하는 사람이란 의미고, 이것은 그대로 조경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정확하게 설명해준다. 그런데 지금도 이견이 많기는 하지만 과연 건물의 자리를 먼저 잡고 거기에 정원을 만드는 것이 올바른 순서인지, 아니면 먼저 대지와 정원을 선정한 뒤 거기에 건물의 자리를 잡는 것이 먼저일지는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볼 문제다. 물론 서양의 경우도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시기에는 먼저 대지를 생각하고 그리고 그 위에 집을 지었다. 비투르비우스는 이 장소에 대해서도 ‘건강한 땅healthy site’를 골라야 한다고 했다. 그가 말한 건강한 땅이란 지대가 높으면서도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마른 땅이었다. 습기가 많은 땅을 금했는데 이유는 습지에서 올라 오는 독성이 집안까지 들어와 사람들의 건강을 헤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그의 사상은 동양의 풍수지리와 너무나 흡사하다. 동서남북의 방향과 산과 강의 위치, 바람의 방향까지도 고려해 집을 지었던 우리의 전통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원 디자인을 하기 전, 정원이 들어서게 될 장소, 즉 땅을 조사site analysis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건 단순히 땅 자체의 모양을 보는 것만은 아니다. 작은 공간이기 하지만 정원은 들어선 방향과 담장의 위치, 바람에 따라 기온 차가 많이 생긴다. 이것을 마이크로 클라이메이트Micro climate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따라 식물의 구성과 정원의 기본 구성 방향이 달라지게 된다. 때문에 대지를 건축하는 조경과 가든 디자이너에게 장소에 대한 확인과 분석은 필수적인 사항이다.
정원의 타입Type of gardens
정원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어떤 목적으로 정원을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또 누가 정원을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매우 다른 정원이 존재한다. 우선 일반 가정집, 가족이 먹고 자는 공간 속에 정원이 조성된 경우를 집정원domestic garden이라고 한다. 그러나 집정원이라고 해도 궁전에 만들어졌다면 왕궁정원Royal palace garden이 될 것이고, 귀족의 대저택에 딸린 정원이라면 매너정원manor garden이 된다. 물론 여기에 따라 정원의 형태는 가족끼리의 조촐한 여가가 중점 정원이 되기도 하지만, 사회 정치적 활동의 장소로 변형이 되기도 한다. 집정원 외에 다른 형태의 정원으로는 식물의 전시를 위한 정원. 즉, 식물원botanical garden, 혹은 수목원arboretum 등이 있다. 이 경우의 정원 디자인은 집정원과는 확연하게 달라질 수 밖에 없다. 더불어 ‘종교적 정원’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신전에 조성된 정원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이와 같은 종교적 정원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드물지만 정원의 초기 모습은 바로 이런 종교적 정원에서 비롯됐다. 끝으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공동주택 정원Estates garden이 있는데 이것은 3백에서 5백여 가구가 함께 공동체를 구성해 사는 유럽의 주거 형태에 딸린 정원을 말한다. 이 경우는 오늘 날 아파트에서처럼 공공의 정원을 함께 이용하는 공원의 개념으로 봐도 좋을 듯 하다. 정원 디자인은 바로 이런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징, 형태를 고려해야 한다. 용도에 맞지 않는 정원은 아무리 잘 만들어졌다고 해도 외면 받고 결국은 사라지게 된다.
예술Aesthetics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평가하는지는 사람, 그리고 민족마다 매우 다르다. 바로 이 부분이 서양과 동양의 정원이 근본적으로 그 형태와 디자인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서양의 경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의 ‘이상주의Idealism’가 건축에 뿌리 깊이 남아 있다. 플라톤은 변화되는 자연을 매우 불완전하게 봤다. 마치 불완전한 인간 마음처럼. 때문에 그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완벽한 아데아Idea의 세계를 통해서만 실현이 되고 그 이데아의 세계를 수확과 기하학에서 찾았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그는 자연의 현상을 그리는 ‘회화’를 당시 매우 저급한 예술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플라톤의 철학은 건축에 적용돼 완전대칭symmetry과 균형balance, 비례proportion를 중시하게 됐고 이것은 정원 발달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서양의 정원은 우리와는 다르게 자로 재고, 각을 맞추고, 깎고, 다듬은 마치 기하학적 도형을 보는 듯한 모습이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와 달리 동양에서는 도(道)사상의 영향으로 무위(無爲),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연주의 사상이 자리잡는다. 때문에 가능한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자연의 모습 그대로, 순리를 따르는 것을 지극한 아름다움이라고 봤다. 때문에 동양의 정원에서는 구불거리는 오솔길과 자연스럽게 휘어져 자라는 나무들이 자라는 서양의 정원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을 추구된 셈이다.
클레이몬트 풍경정원 Claremont landscape garden
왜 다시 정원인가?
도심화가 심해지면서 정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정원은 그 면적이 계속 줄고 있지만 그러나 줄어드는 만큼 정원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무분별한 개발로 자연환경이 파괴되면서 도시의 사막화 현상은 날로 심해지고 있고 여기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미 많은 환경학자, 생태학자들은 도심 속 정원urban garden의 필요성을 더욱 많이 강조한다. 그러나 환경적 문제를 떠나 영국의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은 정원과 자연에 눈을 돌리게 되는 듯 하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엇을 정원 속에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갖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 도서 정보 보기
[영국 정원 산책] 02 – 영국 정원 속의 이탈리아 정원
[영국 정원 산책] 03 – 영국 풍경정원 English Landscape Garden
[영국 정원 산책] 04 – 정원과 아트의 만남, 아트 앤 크라프트 정원Art & Craft Garden
[영국 정원 산책] 05 – 시골풍 정원 코티지 가든
도서 <영국 정원 산책>의 저자 오경아는 16년간의 방송작가 일을 접고, 2005년 두 딸과 함께 가든 디자인을 공부하겠다고 영국으로 향했습니다. 6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학부 과정으로 시작했던 공부가 석사 과정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유니버시티 오브 에식스(University of Essex)의 리틀 칼리지(Writtle College)에서 조경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입니다. 2007년에는 영국 왕립 식물원 큐(Kew Gardens)에서 인턴 정원사로 일하기도 했고, 2008년에는 『소박한 정원』을 펴냈습니다. 어떤 일보다도 가든 디자인 일을 즐기고 있다는 저자는 영국문화원 블로그에 영국 정원에 관한 글을 연재하여 정원이 주는 즐거움을 보다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누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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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림 2011/03/02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중에 좀 이상한 부분이 있어 문의를 드립니다.
"정원 디자인의 요소"라는 부분에서 '정원디자인의 주요 개념을 크게 네가지로 봤다'라고 하셨는데,
그 다음다음 문장에서는 '그의 다섯가지 개념은'이라는 문장이 나와서,
다섯가지인데 한가지가 빠진 것인지, 아니면 네가지 인데 오타가 난 것인지 궁금하구요,
또 그 바로 다음, '여섯 가지 요소'라고 하셨는데,
실제로는 'Land foam, water, vertical&horizontal structure, climate' 다섯가지 밖에 나와있지 않아서요,
혹시 하나가 빠진 것인지, 궁금합니다.
정원에 대해 공부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한번,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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