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포드의 볼 "거리" II
Joan Kim
사실 십여 년 전 학생이었을 때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만으로는 이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옥스포드에 저자보다 더 오래 살고 깊은 인연을 맺은 분들이 더 정확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학업에 몰두하던 정신 없던 상황에서도 나의 볼거리, 먹거리에 대한 욕심이 꿈틀거렸던 것 같고, 현재 다시 영국에 살면서 그 때를 관조하는 마음으로 옥스포드를 다시 돌아볼 수 있어서 이런 안내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인류학적 접근법을 조금 가미해서 우리가 소위 관광을 하더라도 관광지의 외양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역사나 경험이 녹아 든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이러한 미시적인 글을 써보는 것이다.같은 관광지라도 거기에 숨겨진 의미를 많이 알수록 다른 사람의 시행착오를 답습하지 않으면서 깊이 있고 효율적인 여행을 할 수 있다.
St Aldate’s 거리에 있는 Christ Church (아래)의 주출입구의 모습
(출처: 저자, en.wikipedia.org)
다시 옥스포드의 거리로 돌아가보면, 은행과 상점들이 밀집한 중심가인 High Street(하이 스트리트)과 Cornmarket Street(콘마켓 스트리트)에는 유서깊은 옥스포드의 컬리지들이 포진하고 있다. High Street에는 University College(유니버시티 컬리지), The Queen’s College(더 퀸즈 컬리지), St Edmund Hall(세인트 에드먼드 홀)이 있고, 이들과 조금 떨어져 규모가 상당히 큰 Magdalen College(모들린 컬리지)가 있다. High Street 건너편에는 Oriel College(오리엘 컬리지), Corpus Christi College(코퍼스 크리스티 컬리지)와 Merton College(머튼 컬리지)가 있다. 또한 사거리에서 Cornmarket Street으로부터 이어지는 St Aldate’s Street(세인트 올데이츠 스트리트)에는 옥스포드의 Christ Church(크라이스트 처치)가 위치한다.
이들 중 Christ Church와 Magdalen College는 meadow(목초지)와 punting/rowing(뱃놀이, 조정장)으로 유명하다. 이들 컬리지에는 각각 Christ Church Meadow(크라이스트 처치 메도우)와 Magdalen Grove Deer Park(모들린 그로브 디어 파크)가 있고, River Thames(템즈 강)의 지류인 River Cherwell(처웰 강)에서 학생들은 전통적으로 조정경기를 하거나 뱃놀이를 하는데 이 역시도 옥스포드를 상징하는 매력 중 하나이다. 학생들이 각 컬리지별로 클럽에 속하여 자신들의 학교를 상징하는 유니폼을 입고 심각하게 경기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매우 낭만적으로 연출된, 이방인에게는 생경한 옥스브리지 대학문화의 일면을 접하게 된다. 이렇게 컬리지별로 조정경기가 있기도 하고,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 간에 라이벌 경기인 “The University Boat Race(유니버시티 보트 레이스)”가 매년 봄에 열리기도 한다. 이것은 1829년부터 지금까지 지속된 전통으로, 영국 및 전세계 수천만이 지켜보는 단일 스포츠 경기로서는 가장 큰 이벤트라 한다.
물론 이런 느낌을 가지고 관광객으로서 자연과 함께 하는 관광으로 뱃놀이를 할 수도 있다. 또한 Wellington Boots(웰링턴 부츠: 비가 오거나 진흙이 많은 곳에서 주로 신는 고무 장화)를 신고 끝없이 걸어가야 하는 목초지는 황무지처럼 가꾸지 않은 매력을 뽐낸다. 여기에는 사슴뿐 아니라 말도 풀을 뜯고 있고, 사람들도 기분전환 겸 관광 겸 거닐게 된다. 오랜 전통과 문명의 상징인 대학도시에 갑자기 나타나는 야생의 모습은 사실은 티 나지 않게 관리되는 도시의 숨통과 같다고 할까, 매우 영국적인 자연보호의 모습이다.
Chapel에 있는 무채색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옥스포드 케임브리지 대학간 조정경기의 모습(아래)
(출처: en.wikipedia.org, www.mgd.ox.ac.uk)
High Street에는 1774년에 문을 열었다는 The Covered Market(커버드 마켓)이 있는데, 오늘날까지 식료품점, 정육점, 카페 등 40여 개의 상점들이 영업하고 있다. 예전에 이 곳의 구두수선점에서 구두밑창을 고치면서 우리나라와의 작은 문화차이를 경험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수선을 하든지 수선내용에 의해서만 일괄 수선비가 결정되지만, 영국에서는 거기에 구두를 찾아오는 시간이 짧을수록 수선비가 비싸진다. 즉 급하게 고쳐야 하는 경우 수선비를 많이 내야 한다. 그래서 고치는 시간을 넉넉히 잡고 최대한 수선기간을 많이 주고 고쳤던 기억이 난다. 또한 상점에서 옷을 사는 경우도 바짓단 등의 수선을 하는 경우 해당 매장에서는 수선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개인이 알아서 수선집에 맡겨야 하는데 그 비용이 상당히 비싸다. 따라서 영국에서는 수선해서 입을 생각으로 옷을 구매하면 생각지 못했던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어쨌든 이 Covered Market은 옥스포드의 학교들처럼 역사가 현재에 살아 숨쉬는 그런 장소로 가볼 만 하다.
(출처: 저자, www.oxford-covered-market.co.uk)
High Street에는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악명 높은 건물인 Examination Schools(시험학교)가 있다. 이 건물은 이름 그대로 옥스포드 학생들의 주요 시험이 치러지는 곳이다. 학부생은 물론 대학원생들은 최소 1년에 한번씩 이곳에서 시험을 치르게 된다. 나 역시도 우리나라의 졸업식에 입는 검은색 가운을 입고 오직 필기도구만을 들고 이 건물에 들어가 며칠 동안 시험을 쳤던 기억이 새롭다. 이 검은색 가운은 입학하면서 구매하여 이처럼 시험 볼 때, formal dinner(포멀 디너) 라고 해서 컬리지에서 저녁식사 할 때에(컬리지에 따라서 안 입는 경우도 있다) 주로 입는다. 졸업식 때에는 학위에 따라서 색과 장식이 더 가미된 그런 가운을 빌리거나 사서 입는다. 이 시험을 통해 그 동안 갈고 닦은 공부를 토해내던 절박했던 시간이 이제는 ‘당시의 괴로움은 빼고’ 아련한 자부심으로만 기억되니 신기하다. 그 곳의 오래된 책상 앞에 앉아 유난히 길고 두꺼운 시험지묶음을 붙잡고 장시간 무엇인가를 열심히 써대던 순간 창 밖으로 햇살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시간에는 근처 아무 컬리지나 들어가 정원에서 소심하게 샌드위치를 먹었던 기억도 난다. 시험학교의 건물 자체는 참 아름다운데, 이상하게도 그 곳의 내부가 어땠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평소에는 이곳에 갈 일도 없거니와 시험 때는 학과와 학년별 일정에 따라 통제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시험에만 몰두해서 다른 것이 안 보였든지 아니면 아예 지나간 시험은 잊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다.
(출처: 저자, en.wikipedia.org)
한편 옥스포드 시내에서 동쪽으로 움직이면 옥스포드의 공대와 자연대에 해당하는 블록이 나오는데 현대적인 건물들이 옥스포드답지 않게 서 있지만 그렇다고 부조화롭지는 않다. 이 블록에는 오래된 옥스포드 컬리지들과는 스타일이 좀 다른 Keble College(키블 컬리지)를 만나게 되는데, 이 곳은 빨간 벽돌과 흰색 돌의 패턴으로 건축된 건물 외관으로 유명하다. 컬리지 Chapel(교회)에 한 구석에는 이 학교의 숨겨진 보물인 William Holman Hunt(윌리엄 홀만 헌트)의 “The Light of the World(세상의 빛)” 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3장 20절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의 구절을 묘사한 그림이다. 그림에는 2개의 빛이 있는데, 그 하나인 등불은 양심의 빛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머리에 있는 빛으로 구원을 의미한다고 한다. 예수님이 밖에서 두드리고 있는 문은 인간의 영혼을 상징하는데 밖에는 손잡이가 없고 오직 안에서만 열수 있다는 것이다. 그 앞에 서면 조용히 묵상하게 되는 그런 그림이다. 이 그림은 Keble College에서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가서 감상할 수 있는 명작이다 (www.keble.ox.ac.uk 참조).
이 곳의 Parks Road에는 학생들이 산책하고 운동하는 엄청난 규모의 University Park(유니버시티 파크)가 펼쳐져 있고, 옥스포드의 자연과학 분야를 망라하는 University Museum(유니버시티 뮤지엄)이라고도 불리는 Museum of Natural History(자연사 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아름다운 Neo Gothic(신 고딕)식의 건물과 함께 역사 속 자연과학의 주요 논쟁이 이루어지던 현장이라는 의의도 있지만, 무엇보다 최근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 개보수 작업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 등으로 현재에 더욱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박물관 안에는 부속건물로 19세기의 진화론적이고 민속학적이었던 인류학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인류학자인 Pitt Rivers(피트 리버스)의 이름을 딴 세계 최초의 인류학 박물관인 Pitt Rivers Museum(피트 리버스 박물관)이 있다. 개인적으로 박물관학(Museum Studies) 수업을 위해 당시 전시품만큼이나 오래되고 비좁은 돌벽의 박물관 연구실과 부속 Balfour(벨포어) 도서관을 이용하던 기억이 나는데, 최근에 이곳은 이러한 불편하지만 친근했던 운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현대적으로 변신하였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추억이 어려있는, 숨겨진 옥스포드의 거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내가 살았던 컬리지 뒷편 기숙사 근처에 있는 North Parade Avenue(노스 퍼레이드 애버뉴) 라는 길로, 100m 정도 길이에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프랑스 레스토랑, 이탈리안 레스토랑, 영국식 펍(pub)과 빵집은 물론, 공예품 가게, 인테리어 가게 등이 이어져 있다. 매년 여름에는 이 작은 거리에서 축제가 열려 각각의 레스토랑 앞에 테이블을 준비되고 유럽의 전통 춤과 음악 공연이 이루어진다. 평소의 아기자기하고 조용한 풍경도 좋지만 그런 소박하면서도 진지한 축제분위기도 인상적인 곳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이 거리를 추억하는 것은 이 곳의 1평 정도의 샌드위치 가게이다. 학자라고 해도 좋을 근엄하고 지적인 외모의 주인 아저씨가 파는 샌드위치는 저렴하면서 맛있는 학생들의 매일의 주식이다. 나 역시도 이 곳에서 거의 매일 끼니를 해결했었다. 하지만 전혀 질리지 않는 그 맛과, 샌드위치를 사고 파는 데 필요한 말 이상의 대화를 전혀 나누지 않았던 무뚝뚝한 영국 아저씨, 그 오랜 시간 동안 한번도 얼굴을 볼 수 없었던 음식솜씨 좋은 주인 아주머니의 존재가 나에게는 너무나 영국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좁은 공간에서 한결같이 정직하게 또 지나치게 인정이 넘치거나 친절을 남용하지 않던 준수한 외모의 아저씨가 내게는 은은하게 향기를 발하는 영국인들의 모습으로 생각된다. 10년이 지나 다시 찾아갔을 때에도 약간 늘어난 흰머리 외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던 가게와 아저씨의 모습에 거의 감격의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10년 만의 감회를 한마디의 인사로만 대신하고 그저 웃으며 마무리 하였다. ‘계속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세요’ 라는 나의 바람이 진정 축복임을 이미 알고 계시는 듯이….
(출처: 저자)
'영국문화/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런던에 미치다' 이벤트] 옛 런던 ‘시티’를 탐험하다 - 런던 시티의 하루 걷기 여행 (44) | 2010/02/22 |
|---|---|
| ['런던에 미치다' 이벤트] 영화 <셜록 홈즈>, 이름만 빼고 다 바꿔라? (26) | 2010/01/12 |
| 옥스포드의 볼 "거리" II (1) | 2009/12/22 |
| ['런던에 미치다' 이벤트] 런던에서 사랑스러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7가지 방법 (41) | 2009/12/01 |
| [이벤트] 영국의 초간편 인기 요리(7) - 신속 간편 양송이 수프 (10) | 2009/11/20 |
| 옥스포드의 볼 “거리” I (0) | 2009/11/16 |





드시면 손가락
버튼을 꾹 눌러
추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