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an Kim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묵은 호텔은 Handpicked hotel(핸드픽트 호텔) 소속의 호텔이었다. 영국 전역에 걸쳐 오래된 아름다운 저택들을 소규모 럭셔리 호텔로 개조하는 호텔체인인데, 현재 17개가 있다(www.handpicked.co.uk). 대부분 이러한 호텔에는 레스토랑이 한두 개 정도 있고, 웨딩이나 비즈니스 미팅 등을 유치하고, 수영장과 스파시설로 특화된 곳도 있다. 우리가 정한 여행지인 북웨일즈에 있는 핸드픽트 호텔은 Seiont Manor(세이온트 마노)라는 곳이었다.
Seiont Manor는 스노도니아(Snowdonia) 북부 Caernarfon(영어로는 Caernarvon 카나본)의, Llanrug(란러그)에 자리잡고 있는데, 150 acres(에이커)의 대지에 Seiont(세이온트) 강이 흐르고, 양을 방목하고 있는 농장이기도 하다. 대부분 이런 류의 호텔은 저마다의 역사를 갖고 있다. Seiont Manor도 원래는 물레방아가 있던, 버터를 만들던 농장이었는데, 1808년 Trafalgar(트라팔가) 해전에서 외과의사였던 Dr John Hughes M.D.(의학박사 존 휴)가 이 농장을 사서 처음으로 마노하우스를 지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여러 명의 주인이 거쳐간 후에 1986년 Mr & Mrs John Evans(존 에반스 부부)에 의해 호텔로 개조되었고, Virgin Hotels(버진 호텔 그룹)에 의해 운영되다가 1999년 Hand Picked Hotels에 의해 인수되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호텔이 소유하고 있는 지역의 대부분은 수대에 걸쳐 Mr Jones of Llanrug(란러그의 존즈씨)의 집안에 의해 농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Seiont Manor의 입구와 전경
Seiont Hotel의 내부: 라운지와 수영장, 화장실
(사진 1, 2, 3 출처: www.handpicked.co.uk)
(사진 1, 2, 3 출처: www.handpicked.co.uk)
이 호텔은 총 28개의 방이 있는데 우리가 예약한 방은 하루는 brass bed(금속침대)가 있는 executive room(이그제큐티브 룸), 다음날은 four-postered bedroom(사주 침대)가 있는 방이었다. 아이들이 함께 묵을 수 있는 방을 선택해야 하기도 하고, 기왕이면 멋진 침대와 앤티크 가구들이 있는 방에 묵어보고 싶었다. 과연 예상보다 더 넓은 방에 하늘색을 주조로 한 인테리어가 우아했다. 이곳의 가구들은 이곳을 최초로 호텔로 만들었던 John Evans 부부가 수집한 앤티크 가구들로, 단기간에 수집된 것이 아니라 언뜻 봐도 기품 있고 오래된 가구들이었다. 그런 가구들을 소유할 수도, 관리하기도 힘든데 이렇게 짧은 기간이나마 내 집이다 생각하고 누리는 기쁨이 있었다. 무엇보다 밖의 정원으로 나갈 수 있고 전망이 좋은 작은 테라스가 방마다 달려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과 함께 숙박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호텔에서는 여분의 침대를 제공해 주었다. 아이들은 침대를 뛰어다니면서 놀기도 했고 이런 곳에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실내수영장에서 수영도 하면서 조용한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호텔 건물 주변에는 스스럼 없이 양들이 풀을 뜯고 있었는데, 아이들이나 양들 모두 서로에게 생소해서인지 쳐다보기를 계속 하였다.
우리가 묵었던 방들의 모습
다음날 호텔에서 제공하는 B & B 형식의 아침식사를 한 후에, 우리는 Snowdonia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웨일즈에서 가장 높은 산인 Snowdon Mountain(스노우돈 산)(1,085 m)은 우리나라의 속리산(1,058m)과 비슷한 높이로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참고로 영국에서 가장 높은 산은 스코틀랜드의 Ben Nevis(벤 네비스)(1,344 m)이고, 잉글랜드에서 가장 높은 산은 Scafell Pike(스카펠 파이크)(978m)로 백두산(2,744 m)이나 한라산(1,950 m)에 비하면 높지 않다.
왼쪽: 북웨일즈 지도(Snowdonia, Anglesey, Bangor, Llandudno)
오른쪽: Snowdon 산 (출처: www.en.wikipedia.org)
오른쪽: Snowdon 산 (출처: www.en.wikipedia.org)
영어 명칭인 스노우돈 산은 색슨어로 “Snow Dun”, 즉 “snow hill(눈의 언덕)”이라는 뜻에서 유래하듯이 원래는 눈이 많이 오는 산이었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강설량이 1994년 이후 55%나 줄고 있어 그 명칭이 무색할 정도이지만, 대신 비가 많이 와서 일년 평균 강우량이 4,500mm로 맑은 날이 드물다고 한다. 우리가 갔던 날은 운이 좋아서인지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였던 데다가 겨울답지 않게 춥지 않아서 등산하기에는 좋았다. 하지만 아이들과 무리한 등산을 할 수도 없고 등산장비는 물론 등산화조차 없어서 산 아래에서 등산 기분만 느꼈다. 겨울에는 이곳도 등산이 제한된 곳이 많고, 주로 바위산으로 암벽등반처럼 일반인들이 하기 힘든 등산로가 많아서 이 날도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Snowdon Mountain Railway (출처: www.snowdonrailway.co.uk)
등산을 하는 대신 산정상인 Yr Wyddfa(얼 위드바)까지 1896년에 개통했다는 등산열차(Snowdon Mountain Railway)를 타볼까 했지만 이 역시 겨울에는 운행을 하지 않고 특히 2008년 봄까지 개보수 작업을 해서 이용할 수가 없었다(www.snowdonrailway.co.uk). 산이 높지 않아서 정상까지 보통은 2-3시간 정도 걸리는데, 여러 등산루트 중에서 등산열차가 출발하는 Llanberis(란베리스)는 마치 계룡산 밑자락 동학사 가는 길을 연상시키듯 안내사무소와 박물관, 호텔과 B & B, 음식점들이 이어져 있고, 한편으로 마을 분위기는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정돈되어 있어 스위스의 어느 산악마을에 와 있는 느낌도 받았다. 그 외 Llanberis에는 호수와 호수를 관람할 수 있는 호수열차도 있다. Llanberis와 가까운 Pen-y-Pass(펜-이-파스)는 정상까지 가는 비교적 어려운 세 개의 주요 등산로(①the Miners Track, ②the Pyg Track, ③the ascent via Crib Goch)가 시작되는 곳으로, 1830년대에 Llanberis에서 Pen-y-Pass까지 길이 뚫렸고 지금은 유스호스텔로 바뀐 호텔과 카페, 안내사무소, 주차장이 있다.
1. Llanberis의 표지판의 모습, 2. 고즈넉한 Pen-Y-Pass의 전경,
3. Llanberis에서 Pen-Y-Pass 가는 길
3. Llanberis에서 Pen-Y-Pass 가는 길
우리는 간단히 Llanberis와 Pen-y-Pass를 돌아보았는데, 멀리서 보면 완만해 보이는 산이었지만 가까이 가서 올라가려 하니 바위투성이의 가파르고 힘든 산이었다. 이내 포기하고, 이곳 저곳 흩어져 있는 바위 사이를 성큼성큼 올라가는, 나중에는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게 된 등산객들을 보면서 새삼 자연의 웅장함과 인간의 무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산 중턱까지 올라가 듬성듬성 풀을 찾아 먹고 있는 양들을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왼쪽: 척박한 스노도니아의 바위산, 오른쪽: Snowdon 산 정상의 모습
(오른쪽 사진 출처: www.en.wikipedia.org)
(오른쪽 사진 출처: www.en.wikipedia.org)
스노도니아: 자연만이 있는 곳
다음으로 간 곳은 Portmeirion(포트메리온) 이었다(www.portmeirion-village.com).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영국의 대표적인 도자기 브랜드 중 하나인 포트메리온(Portmeirion Pottery)이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곳은 스노우돈 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Porthmadog(포트마도그)라는 마을의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빌리지는 해안가에 지은 여러 채의 이탈리아식 저택의 빌리지를 말하는데, 알록달록 파스텔 색의 지중해식 건물이 영국에서는 매우 이국적으로 보인다. Sir Clough Williams-Ellis(클로우 윌리암스-엘리스 경)가 소유하고 디자인한 이 빌리지는 1925년부터 1975년 사이에 지어졌는데, 이탈리아의 Portofino(포르토피노)라는 곳을 본떠 지었다는 말도 있다. 이 곳의 첫인상은 팬시하고 로맨틱한 느낌이 들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가 부조화스럽고 놀이동산처럼 비현실적이고 유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금색의 조악한 불상과 흰색 페인트로 칠한 성모상을 같은 뜰에 배치해 놓았다든지, 시멘트로 바른 후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해 놓은 건물 외벽의 모습은 좋게 보면 포스트모던(postmodern)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면 내구성이 떨어지고 저렴한 느낌이 든다. 원래 이곳의 호텔을 비롯한 몇 개의 주 건물들은 1850년대부터 있었는데, 현재 포트메리온 호텔을 비롯해서 self-catering cottage(자취형 오두막집) 17채가 운영되고 있다.
주소: Gwynedd, LL48 6ET, Cymru, Wales
주변에는 중세의 유적이 남아있는 Castell Deudraeth(카스텔 도이드라에트)가 있는데, Williams-Ellis 경이 애초에 이 빅토리안식 맨션을 포트메리온 빌리지에 포함시키고자 했던 기획이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실현되어 오늘날에는 이 역시 호텔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 가족도 이 곳에서 흡족한 점심식사를 먹고 난 후에, 생각보다 비싸서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던 포트메리온 빌리지 입장권을 얻을 수 있어서 뜻밖에 일석이조의 기쁨을 누렸다.
Castell Deudraeth 호텔과 레스토랑
포트메리온 빌리지가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도자기 때문이다. Sir Clough Williams-Ellis의 맏딸인 Susan Williams-Ellis(수잔 윌리암스-엘리스)는 포트메리온의 대표적인 시리즈인 Botanic Garden(보타닉 가든)이나 Pomona(포모나) 등의 시리즈를 디자인한 디자이너이자, 남편인 Euan Cooper-Willis(유안 쿠퍼-윌리스)과 함께 Portmeirion Pottery(포트메리온 포터리)를 세운 창업자이다.
20세기 초, 수잔의 아버지는 작가인 Virginia Woolf(버지니아 울프), E. M. Forster(포스터), Lytton Stratchey(리톤 스트라치), 경제학자 John Maynard Keynes(존 메이나드 케인즈), 화가 Duncan Grant(던컨 그란트)와 같이 문학, 미술, 비평, 경제학, 건축학 등의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Bloomsbury Group(블룸스베리 그룹)의 핵심인물이었다. 이러한 건축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수잔은 자연스럽게 예술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1930년대에 Dartington College of Art(달팅톤 컬리지 오브 아트)에서 Leach Pottery(리치 포터리)사의 Bernard(버나드)와 David Leach(데이빗 리치) 부자로부터 도자기를 배웠고, 1940년대에 Chelsea Polytechnic(첼리 폴리테크닉, 현재는 Chelsea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오늘날 영국의 모던 아트의 대표자인 Henry Moore(헨리 무어)와 Graham Sutherland(그래함 서더랜드)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1945년 남동생의 캠브리지 대학 친구였던 남편과 결혼하여 1948년 웨일즈로 이사오게 된다. 수잔과 남편은 1953년 수잔의 아버지가 세운 포트메리온 빌리지에 있는 선물가게에서 도자기를 팔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성공을 거둬 1961년에 런던의 고급상가가 모여있는 Sloane Square(슬로운 스퀘어)의 Pont Street(폰트 스트리트)에 2호점을 내고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당시 회사의 성공과 함께 포트메리온 빌리지를 배경으로 한 텔레비전 시리즈인 “The Prisoner(더 프리즈너)”가 방영되면서 이곳은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주부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포트메리온의 Botanic Garden 시리즈는 수잔이 18세기의 앤티크 서적들을 찾아 다니던 중에 1817년에 출판된 Thomas Green(토마스 그린)의 허브 책(“The Universal-or-Botanical, Medical and Agricultural Dictionary”)을 역사적으로 만나 영감을 얻어 탄생되었다고 한다(1972). 하지만 당시만 해도 한 세트로 균일한 디자인의 식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Botanic Garden과 같이 여러 종류의 그림이 같은 시리즈로 나오는 식기는 생소했다고 한다. 또한 이전에는 없었던 생활의 전 영역에 걸친 토털 라이프스타일 제품의 개념을 창안하였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한 포트메리온 이후 이런 스타일의 도자기가 인기를 얻었고 오늘날까지 전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이전 1960년대의 수잔의 초기 디자인인 Malachite(말라카이트)(1960)와 Moss Agate(모스 애거트, 이끼 마노)(1961), Rose and Tiger Lily(장미와 참나리)와 같은 꽃 이미지(1963) 등은 그 희소성과 가치로 인해 수집가들의 주된 목표가 되고 있고, Botanic Garden 시리즈는 지난 2007년 35주년을 맞이하였는데, 수집가 클럽이 운영되고 있을 정도로 도자기 업계에서 독보적인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평범한 꽃 그림이었지만 무엇인가 달랐던 디자인으로 인해 그녀의 아버지가 강조해 왔듯이 “good design is good business(좋은 디자인은 좋은 사업)”라는 말이 실제로 증명된 셈이다(www.portmeirion.co.uk).
초기 패턴들 왼쪽부터 Malachite, Moss Agate, Rose, Tiger Lily 모양 (출처: www.portmeirion.co.uk)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포트메리온은 그 가격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갖고 싶어하는 그런 제품이 된 것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포트메리온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이 팔리는 시장이라고 한다. 식기와 주방용품은 물론 욕실용품 등 제품의 종류도 여러 가지이고, 우리나라의 경우 가격대나 구매방식도 백화점이나 수입상가, 홈쇼핑이나 인터넷을 통한 구매 등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포트메리온은 워낙 패턴이 화려하다 보니 여러 개를 상에 놓았을 때에 약간 정신이 없고, 특히 서양식기이니만큼 한국음식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포트메리온을 애용하는 사람들은 디자인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이고 잘 깨지지 않고 오븐, 식기세척기, 전자레인지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튼튼한 그릇이라는 장점을 말한다.
Botanic Garden의 초기 디자인과 최근 디자인, 포트메리온 빌리지의 매장
포트메리온 빌리지에는 포트메리온 본매장과 할인매장이 있다. 약간의 흠이 있는 second-quality(2급) 상품들을 20-40%까지 세일을 한다. 그런 작은 흠은 감수하고 일상생활에서 부담 없이 사용하는 데에는 할인매장의 상품들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커피잔과 접시 몇 개를 기념으로 사 보았다. 이 외에도 포트메리온 할인매장이 영국에 몇 군데 더 있는데, 특히 영국 도자기산업의 메카이자 포트메리온 사가 있는 Stoke-on-Trent(스토크-온-트렌트)에는 포트메리온 외에 Royal Doulton(로열 달튼), Ansley(앤슬리), Wedgwood(웨지우드), Spode(스포드), Emma Bridgewater(엠마 브리지워터) 등의 팩토리샵이 있다(자세한 정보는 www.visitstoke.co.uk).
마지막 날 우리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웨일즈 북부 해안지방의 주요도시들을 돌아 Birmingham(버밍험) 거쳐 런던으로 내려오는 여행경로를 택했다. 사실 이 길이 지도상으로는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비교적 곧게 뻗은 큰길이 많아 수월하다. 남동부 웨일즈를 제외하고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곳이 바로 이 북부해안지방인데 유서 깊은 웨일즈의 도시들이 자리잡고 있다(북웨일즈에 관해서는 www.northwales.co.uk 참고).
우리가 처음 들른 곳은 Bangor(뱅거)와 이곳과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Anglesey(앙글시)라는 섬이었다. 특히 앙글시 섬은 그냥 섬이라기 보다는 영국과 아일랜드를 연결하는 항구로서, 대학도시인 뱅거보다도 이곳에서 배출된 인물이나 지리적 위치 면에서 더욱 중요한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앙글시의 Holy Island(홀리 아일랜드) 라는 섬의 Holyhead(홀리헤드)와 아일랜드 더블린 근처 Dún Laoghaire(영어로 Dunleary 던리어리)까지 이어지는 뱃길은 영국과 아일랜드 공화국(the Republic of Ireland)을 연결하는 최단거리의 항로이다. 이러한 지리적 비중 때문인지 홀리헤드에는 로마시대의 요새와 망대가 있었고, 앙글시 섬도 로마제국의 지배와 4세기말, 5세기에 Irish pirates(아일랜드 해적), 9세기에 이후 Vikings(주로 Danish Vikings 데니시 바이킹), Saxons(색슨족), Normans(노르만족) 등의 침입을 받았고, 결국 13세기 에드워드 1세 때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앙글시에 관해서는 http://www.goanglesey.com 참고).
메나이 다리의 아름다운 모습
(맨 위 사진 출처: www.en.wikipedia.org)
(맨 위 사진 출처: www.en.wikipedia.org)
앙글시와 뱅거는 the Menai Strait(메나이 해협)을 두고 두 개의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 중 Thomas Telford(토마스 텔포드)가 디자인한 1826년 개통된, 흡사 런던의 Tower Bridge(타워브리지)를 연상시키는 현수교(suspension bridge)인 Menai Bridge(메나이 다리)가 우아하게 서 있다. 우리 생각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다리와 해협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상업시설들이 주변에 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주변에는 주택가와 펍이 조화롭게 있을 뿐, 우리가 본 것은 다리 밑에서 카누를 즐기는 유니폼을 입은 일단의 동호회원들의 경쾌한 모습뿐이었다. 어두운 녹색의 숲을 끼고 잿빛의 바다를 마주하고 양안으로 펼쳐지는 고급스런 저택들의 모습은 흡사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 해협 양쪽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면서 화려하지 않고 그러면서도 어딘지 무거운 느낌의 고급스러움이라고 할까?
Bangor쪽에서 본 Anglesey 섬의 저택들
다음으로 Bangor를 지나 동쪽 해안을 달려 Conwy(콘위)로 갔다. 이 도시는 그 모양과 이미지가 중세의 소도시를 연상시켰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바다에 면한 약 500m의 성벽이 도시를 삼각형으로 둘러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Conwy Castle(콘위 성)과 성벽은 에드워드 1세가 웨일즈 정복의 하나로 지은 것으로 중세의 고색창연함이 묻어있다(1283-1289). 콘위에는 이보다 앞서 13세기 초 웨일즈의 Gwynedd(그웨네드)의 Llywelyn the Great(르웰린 대왕)이 소위 White Monks(백색 수도사)로 알려져 있는 로만 카톨릭계의 Cistercian(시스터시안)을 지원하여 세운 사원인 Aberconwy Abbey(아베콘위) 사원이 있는데, 르웰린 대왕 자신은 물론 그를 이은 웨일즈의 왕들이 묻힌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콘위성은 UNESCO(유네스코)의 World Heritage Site(세계유산등록지)이고, 콘위성과 어울리게 디자인된 Conwy Suspension Bridge(콘위 현수교)는 뱅거의 Menai Suspension Bridge(메나이 현수교)와 함께 1826년 Thomas Telford가 건축하였는데 현재는 National Trust(내셔널 트러스트)가 관리하고 있다. 우리는 자동차로 원래의 콘위 현수교 옆에 세워진 자동차 다리로 콘위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성과 다리에서 새삼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왼쪽: 콘위타워에서 본 콘위 정경, 오른쪽: Aberconwy Abbey
왼쪽: Conwy로 들어가는 길에서 보이는 콘위성과 콘위현수교, 오른쪽: 콘위성의 모습
왼쪽: National Trust가 관리하는 콘위현수교, 오른쪽: 콘위현수교 양옆의 자동차다리와 철교 (위의 콘위 사진들 출처: www.en.wikipedia.org)
Conwy Quay(콘위 부두) 쪽으로 가면 영국에서 가장 작은 집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The Smallest House(더 스콜리스트 하우스)"가 있다. 이 집의 크기는 3.05m X 1.8m로 1600년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심지어 한 가족이 살기도 하였다고 한다. 1900년에는 Robert Jones(로버트 존스)라는 어부가 살았으나 council(우리나라의 구청에 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집으로 판정하여 퇴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집안이 이 집을 소유하며 입장료 등의 관광수입을 얻고 있다.
왼쪽: The Smallest house in the UK
(출처: www.en..wikipedia.org)
오른쪽: Deganwy Quay의 콘위 전경 (출처: www.greatorme.org.uk)
(출처: www.en..wikipedia.org)
오른쪽: Deganwy Quay의 콘위 전경 (출처: www.greatorme.org.uk)
우리가 웨일즈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Conwy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반도인 Llandudno(란디드노)였다. 이곳은 빅토리아 시대 중반부터 철도가 연결되고 기타 시설이 세워지면서 휴가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하여, “Queen of the Welsh Resort(웨일즈 리조트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여름의 란디드노 Promenade와 The Victorian Pier
(출처: www.greatorme.org.uk)
(출처: www.greatorme.org.uk)
The Great Orme 지역의 1902년 개통했다는 전차(tramway)와 1969년 개통한 케이블카(cable car) (출처: www.greatorme.org.uk)
란디드노에는 Lewis Carroll(루이스 캐롤)의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는 Alice Liddell(앨리스 리델) 가족이 휴가 때마다 머물렀던 서쪽 해안의 별장인 Pen Morfa(펜모르파)가 있다. 이곳은 1862년에 앨리스의 아버지인 Henry Liddell(헨리 리델)이 지었고, Gogarth Abbey Hotel(고가스 사원 호텔)이 되었다가, 이 후 Pen Morfa Hotel(펜 모르파 호텔)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2006년에 재건축을 위해 문을 닫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찾아갔을 때에는 흉하게 건물 반쪽이 제거된 상태로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주변의 바위산과 함께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센터(The Alice in Wonderland)"를 운영하며 관광상품화 하고(www.wonderland.co.uk), 앨리스와 루이스가 이곳에서 만났다고 전한다. 하지만 작가인 루이스 캐롤은 옥스포드 Christ Church(크리이스트 처치) 컬리지에서 가르치면서 당시 학장이었던 Dean Henry Liddell의 가족과 많은 교류를 하였지만 그의 딸인 Alice Liddell을 실제 모델로 삼지 않았다고 하고, 란디드노를 방문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한다.
왼쪽: Alice Riddell 가족이 휴가를 보내던 별장전경 (출처: www.greatorme.org.uk)
오른쪽: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의 삭막했던 모습
오른쪽: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의 삭막했던 모습
란디드노에서 우리가 받은 인상은 겨울에 방문해서인지 "웨일즈 리조트의 여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들뜨고 발랄한 관광지의 모습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거칠고 황량해 보이는 자연환경 속에 사색하고 침잠되는 분위기를 느꼈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이 작고 외진 지역에 생각보다 많은 인구인 2만 정도가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런던에서 바로 이어지는 Virgin Trains(버진 철도)가 지난 1964년 증기기관차가 운행을 멈춘 후 2004년부터 다시 런던에서 란디드노까지의 3시간 반 거리의 노선을 매일 운행하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의 웨일즈 여행은 짧지만 나름대로 알차게 끝났다. 여행의 윤곽은 세웠지만 세세한 일정은 그때그때 편한 대로 잡으면서 한 여행이었다. 영국에서 웨일즈는 시골스럽고 낙후되었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는 순수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웨일즈의 모습은 여러 지역이 서로 다른 색깔을 띄고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매우 정돈되고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다. 양을 비롯해서 동물을 방목하면 냄새도 많이 날 텐데 그런 냄새를 거의 맡지 못했다. 아무리 시골로 가도 재활용 쓰레기통 하나를 밖에 내놓은 집이 없고,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외관을 정갈하게 가꾸어 놓았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자로 잰 듯 화보마냥 숨막히게 꾸미지도 않았다. 순박하지만 세련되었다고 해야 하나, 참 담백했다. 내가 접한 웨일즈의 자연은 산과 호수, 바다 모두가 감춰진 것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바위투성이의 척박한 산들이 버려진 것처럼 굽이굽이 구릉지고, 바다건 호수건 짙은 무채색의 물빛깔이 그 속에 풍덩 빠져 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한걸음 떨어져 관조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자연의 생긴 모습이 그래서 인지, 아니면 그 자연 앞에 사람들이 오랫동안 익숙해져서 인지, 웨일즈의 이미지는 자연과 사람 모두 무심한 듯 겸손하고, 비장하되 우울하지 않았다. 자연만 보고 여행했다고 하면 지루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한살 두살 나이를 먹으면서 이제는 그 안에서 사람도, 역사도, 문화도 찾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자연만으로 충분하게 느껴진다. 여행에서 바쁘게 지나쳐 온 것들을 글로 곱씹으며 정리할 수 있어서, 이번 글은 나에게 불명확한 찰나의 추억을 오래 남을 기록으로 바꾸어 준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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