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an Kim

매해, 매분기마다 패션이나 인테리어 등의 각 분야에서는 소위 ‘유행(trend)’이라는 것이 대두된다. 유행은 대중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나기도 하지만 전문가들에 의해서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한 유행이 제시되고 반영되는 주된 곳이 패션분야에서는 패션쇼이고, 인테리어나 건축분야에서는 페어/엑스포(fair/expo)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유행의 기본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컬러(colour)’가 아닌가 싶다. 색도 유행이 있고 심지어 이것을 연구하여 만들어내는 곳이 있다.

영국에는 색의 국제적인 트렌드를 제시하는 단체가 있다. 내가 이것을 접한 것은 작년 9월에 런던의 첼시(Chelsea)에서 열렸던 “Decorex(데코렉스)”라는 인테리어 페어에서 였다. Decorex는 런던을 중심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는 핵심적인 업체들과 전문가들이 새로운 인테리어 트렌드를 소개하고 신제품의 주문과 거래가 이루어지는, 규모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지만 수준 있고 실속 있는 행사이다(http://www.decorex.com/). 그 외에 세미나와 강연을 통해 교육과 홍보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그 중 Colour Consultant(컬러 컨설턴트)인 Lisa J. Pilley(리사 J. 필리)의 “Colour Trends in the Real World(현실세계에서의 컬러 트렌드)”라는 강연을 듣고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새해를 맞이하여 소개해 본다.

2007년 9월 Royal Hospital Chelsea에서 있었던 Decorex 이모저모.
가구, 패브릭, 벽지, 카페트/러그, 커튼, 소품, 앤티크 등의 박람회.
여러 주제의 강연들이 열렸는데 그 중 컬러 트렌드 관련 강연의 모습.

이전에는 색에 독자적으로 트렌드가 있기보다는 패션, 미용, 인테리어, 음식, 인쇄, 영상 등의 분야에서 하나의 요소로서 보조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했고, 색채 전문가인 colourist(컬러리스트)나 colour consultant(컬러 컨설턴트), colour coordinator(컬러 코디네이터)와 같은 직업이 있다는 의식은 별로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강연을 듣는 가운데 색깔이라는 것이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또 색상을 연구하고 색과 관련된 분야에 직접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들의 규모가 상당하며 그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영국의 경우 이러한 색상 연구 단체가 독자적으로든 산업체와 연관되어 있든 색상연구에서 국제적으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강연의 발표자는 컬러리스트로서 ICI Paints(아이씨아이 페인트)라는 그룹에 색채자문을 하고 있고, 컬러 트렌드에 관한 Dulux Research Programme(듀렉스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강연에서 자신의 색채자문 경험과 연구결과를 보고하였다. 이 내용은 ICI Paints의 홈페이지(http://www.icipaints.com/)나 이곳에서 발간된 비매품 책(“Colour Futures 2008: International Colour Trends”)으로 소개되는 것을 참고하면 되겠다. ICI Paints는 세계 3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는 건축과 데코레이션 페인트와 상품포장 페인트를 생산하는 글로벌 회사라 한다. 색깔이 가장 많이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곳이 페인트라고 할 때 이들이 순수 연구기관이 아닌 상업적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트렌드를 읽고 또 적극적인 트렌드 제시를 위한 연구를 해야 할 필요성을 갖는 것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것 같다.

Decorex에서도 개인적으로 느꼈지만 영국이 패브릭이나 페인트, 벽지 등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쌓인 전통을 기반으로 세계적으로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패턴을 발굴, 보유하고 또 창조해가는 패브릭과 벽지의 패턴연구가나 디자이너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고, 일견 같아 보이지만 미세하게 다른 페인트의 수많은 색상과 이들의 명명법/분류법, 또 이러한 색상의 다양한 사용법은 과연 하나의 학문이라 할 정도인 것 같다. 영국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영국인들은 색을 쓰는데 과감하고, 그 감각이 세련되다고 지적하는데 이런 기반들이 탄탄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날 색채가 중요한 것은 색깔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색채전문가들에 따르면 색은 특정 분야에 전문적으로 적용되기도 하지만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올해의 컬러로 선정된 것은 노랑색 중 하나로 쉽게 말하면 ‘파스텔 노랑’이다. ICI Paints 팔레트번호에 따르면 “40YY63/473”이라고 한다. 지난 5년 동안의 올해의 컬러를 보면, 2004년에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도 에피소드로 언급되는 ‘하늘색(turquoise)’으로 정신과 신체의 조화, 스파 이미지(spa spirit)와 연관되고, 2005년에는 역동성과 희망을 상징하는 ‘오렌지색’이었고, 2006년에는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옐로 그린색(yellow green)’, 2007년에는 도시적이고 현대적인 ‘남성적 핑크(masculine pink)’였다.

올해의 색 "40YY63/473"
(출처: "Colour Futures". 이후 동일출처)

지난 5년간의 올해의 색

노랑색은 원래 따뜻하고 사교적이고 환영하는 의미를 상징하고, 희망, 존경, 빛, 복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는 금, 가치있는 것과 연관되고, 현대적으로는 활기, 시선주목, 도전, 기발함과 연관된다. 색채심리학자들은 노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창조적이고 활발하고 포용력이 있고 영감을 주고 지적이라고 하고, 또한 노랑이 사용되는 곳은 학교, 도서관과 같은 학습과 관련된 곳이 많다고 한다. 노랑에는 레몬색(lemon), 겨자색(mustard), 미모사색(mimosa) 등 수많이 색이 있는데, 올해의 색은 강렬한 노랑도 아니고 옅은 노랑도 아닌 중간톤의 부드러운 파스텔 노랑이며, 올해 다른 모든 색에 이 노랑이 가미된 색이 유행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것은 이전에 강렬하고 공격적이며 노골적인 경향과는 반대되는 부드럽고 자연에 가까운 편안한 색으로의 귀환이다. 참고로 "Colour Futures"에서는 노랑, 빨강, 오렌지, 노랑, 파랑, 녹색, 자주, 따뜻한 중간색, 차가운 중간색의 사례를 소개하였다.

올해의 색인 노랑색이 제시된 책과 이 노랑색이 응용된 사례

(사진) 올해의 빨강, 오렌지, 녹색, 파랑

올해의 노랑, 보라, 따뜻한 중간색, 차가운 중간색

Laura Ashley(로라 애슐리) 2008년 Spring Summer Home Collection(2008년 봄여름 홈콜렉션)에서 Cool Neutral(차가운 중간색)이 적용된 사례 (이후 로라 애슐리 출처는 2008년 SS 카탈로그)

또한 “Colour Futures” 전문가들은 5가지 주제를 선정하고, 이 주제들과 올해의 색이 가미된 5가지 색을 연관지어 올해의 컬러 트렌드를 제시하였다. 첫번째 주제인 “Growing Respect(생명에 대한 존경)”는 녹색(green)이 주조가 된다. 흙, 씨앗, 채소, 나무, 곤충의 색에서 영감을 얻고,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이며, 재활용 개념과 연결된다.

주제1 “Growing Respect”와 녹색을 주조로 한 색상들

두번째 주제는 “Ebb & Flow(밀물과 썰물)”로 바닷물의 이미지에서 나온 파랑과 산호색이 주를 이룬다. 물의 유동적이고 투명한 이이미지와 해파리나 바다생물들의 색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주제2 “Ebb & Flow”와 그에 따른 파랑과 산호색을 주조로 한 색

이것이 응용된 Laura Ashley의 2008년 Spring Summer 콜렉션

세번째 주제는 “Art Form(아트폼)”으로 이것은 20세기 모더니즘 운동과 바우하우스 운동에서 출발한 것으로, 단순함이 실용성과 만나고, 미적인 것과 기능적인 것, 예술과 디자인이 결합하는 것이다. 이 분위기는 도시적이고, 산업적이며, 남성적이며, 단선적이다. 올해의 컬러인 노랑계열 팔레트는 회색(dusty grey)계열과 조화를 이루며 이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주제3 “Art Form”과 노랑색과 회색을 중심으로 한 색

노랑색과 회색이 조화된 Laura Ashley의 2008년 SS 콜렉션

네번째 주제는 “Hidden beauty(숨겨진 아름다움)”인데 빨강색이 노랑과 만난 자주색계열이 주조색이다. 이 색깔들의 분위기는 신비롭고 베일에 가려져 있는 분위기이면서 세련되고 관능적이며 럭셔리한 느낌이라고 한다. 이것은 붉은 장미, 벽돌, 모래, 진주, 조개의 이미지가 조화된 모습이라 보면 된다. 디자이너 Karim Raschid(카림 라쉬트), Arik Levy(아릭 레비), 건축가 Zaha Hadid(자하 하디드), Hasan Fathy(하산 화티) 등이 이러한 이미지를 잘 이용했다고 한다.

주제4 “Hidden Beauty”와 붉은계통의 색상들

Laura Ashley 2008년 Spring Summer 카탈로그

마지막 주제는 “Explorer(탐험가)” 이미지로서 다양한 문화의 다채로운 색깔이 올해의 컬러와 만난 분위기이다. 그야말로 컬러풀한 색의 조합으로 소위 에스닉한 이미지로서, 디자이너 Paola Lenti(파올라 렌티), Patricia Urquiola(파트리샤 우르키올라), Campana(캄파나) 형제가 이러한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중국의 빨간색,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얼음색, 인도의 오렌지색 같은 경우가 이러한 사례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별로 동의할 수 없으나, 오늘날 실제 여행이든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교류든 간에 문화의 혼합현상이 명백하듯 종족적 이미지가 뒤섞인 다채로운 색깔이 공존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주제5 “Explorer” 와 이국적이며 다채로운 색상조합

물론 이러한 제시는 하나의 제안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이렇게 단언적으로 올해의 색이라고 해서 어떤 경향이 제시되는 것이 의아하기도 하다. 과연 이런 경향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유행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곳에서 우연히 생겨날 수도 있지만 이처럼 광범위한 조사를 통해서 정교하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색채는 우리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트렌드를 따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상품, 우리가 접하는 환경에 이러한 트렌드가 녹아들어 있다. 이렇듯 컬러 트렌드는 대중들의 삶에 영향을 주고, 관련 산업에 작용하며 이 현상은 오늘날 글로벌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영국과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 나라마다의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트렌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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