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영 예술가와의 인터뷰] 01 비디오 아티스트 김세진 작가

영국문화/예술 2012/06/08 18:04 Print Friendly and PDF AddInto

런던을 누비는 비디오 아티스트 김세진 작가를 만나다


주한영국문화원 블로그에서는 영국 유학 후 런던에 머물며 글을 쓰고 있는 손세희씨의 글을 2012년 6월부터 새롭게 연재합니다. 최근 세계 각지에서 많은 한국 예술가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현대미술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런던에도 상당히 많은 한국 작가들이 유학이나 작품 활동을 위해 머무르고 있지요. 

손세희씨는 런던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 작가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예술과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국에도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작가들과 역량 있는 신진 작가들을 고루 만나보게 될 이 인터뷰를 통해 런던이라는 도시가 갖는 문화적 저력도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세계가 주목하는 런던의 최신 예술 트렌드도 알아볼 수 있는 이 시리즈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첫 번째 만남. 김세진 작가

뭐든 첫 번째는 설레고 긴장된다.
이번에도 앞으로 한동안 연재할 이 인터뷰 기사를 어떻게 시작할까 은근히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오래 전에 본 변혁 감독의 ‘인터뷰’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아마도 제목 때문이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으며 ‘사랑’이 무언가를 질문하는 영화 속 영화 감독은
영화가 끝날 무렵 자신도 모르게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을 만나 그들의 예술과 삶에 대해 나누는 이 여정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과 창조적 생각을 만나고 예술의 특별하고도 매력적인 맛을 발견하는
즐거운 기회
가 되었으면 좋겠다. 

비디오 아티스트 김세진을 만나던 날,

오월 내내 내렸던 비가 잠시 그치고 반짝 하고 햇살이 반가운 얼굴을 내밀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관심 있게 봐왔던 작가였다. 들뜬 마음으로 작가가 공부하고 있는
슬레이드 미술대학(Slade School of Fine Art)을 찾았다. 슬레이드 미술대학은 런던대학교의 열 아홉 개 컬리지 중
하나인 유니버시티 컬리지 오브 런던(University College of London, UCL)의 순수예술 분과로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모나 하툼(Mona Hatoum),
마틴 크리드(Martin Creed)
등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예술가들이 졸업한 학교이기도 하다.
유월 초에 있을 석사 과정 졸업 전시를 앞두고 한창 바쁜 김세진 작가가 귀한 시간을 내주었다.  

 

손세희(이하 손): 비디오 아티스트신데 작가로서 비디오 아트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김세진(이하 김): 물질이 아니라는 것? 형상화, 물질화를 추구하는 미술의 전형적인 개념, 생각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보였어요. 열두 살부터 동양화를 했는데 그 노동 집약적인 작업 과정이 매우 고루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죠. 그에 비해 문학은 연필하고 종이만 있으면 공간이 창조되기도 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하잖아요. 치기 어린 마음에 그런 게 높은 차원의 예술이라고 생각했고 전원을 끄면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비디오 아트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손: 언급하셨듯이, 동양화는 고지식한 노동의 과정이 화폭 위에 고스란히 물질의 형태로 드러납니다. 그에 비해 비디오 아트는 전원을 끄면 사라지니 더 이상 그의 물질성을 주장하지 않는데 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 뜻인가요?

김: 네, 그렇습니다. 그러다가 근래 와서는 노동의 중요성에 대해서 돌아보게 됐어요. 문학을 하는 사람도 그냥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걸 쓰기 위해 조사도 하고 취재도 하며 준비를 하잖아요. 비디오 작품도 역시, 연구와 다사다난한 전후 프로덕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10 to 10, 16mm 필름변환 DVD, 흑백, 19분20초, 2001년 ⓒ 김세진
10 to 10, 16mm 필름변환 DVD, 흑백, 19분 20초, 2001년 ⓒ 김세진



손: 현대 비디오 작품 중에는 특별한 스토리 없이 시각적 혹은 청각적 경험만을 의도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루할’ 수도 있지요. 그에 비해 김세진 작가의 작품은 영화적 구성을 사용해 관객에게 다음 장면을 기대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10 to 10>, <연선 채에 관하여 About YS Chae>, <빅토리아 파크 Victoria Park>가 그런데요, 이와 같은 형식을 이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김: 영화를 좋아해요. 상업 영화 감독을 해보고 싶어서 영화를 공부하기도 했고요. 영화에 대한 관심이 작업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스토리텔링에 대한 이야기라면, 저는 스토리텔링에는 사실 재주가 없는 사람이에요. 저는 어떤 줄거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에서 현상을 읽고 그걸 영화적으로 구성하는 편이에요. <빅토리아 파크> 같은 경우를 봐도 특별한 사건이 전개되지는 않습니다. 구조도 단순하고요. 작품이 그 장면과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 직접적으로 설명을 하지 않아요.

타이페이에서 레지던시주1) 를 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 디렉터가 동남아 각국에서 온 가사도우미들이 홍콩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에 관해 작업을 해 보지 않겠느냐 제안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관심이 없었어요. 몇 년 뒤 홍콩에 몇 개월 머물 기회가 있었는데 어느 주말에 그 가사도우미들이 온 시내 곳곳을 점령해 있는 것을 봤어요. 마치 도시의 비둘기들처럼. 충격을 받았죠. 제가 촬영한 빅토리아 파크의 잔디밭을 거의 가득 채우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주변 동남아 국가에서 온 젊은 여성들인데 바로 그 가사 도우미들입니다.


빅토리아 파크, 가변 채널 비디오, 3분56초, 2008년 ⓒ 김세진
빅토리아 파크, 가변 채널 비디오, 3분 56초, 2008년 ⓒ 김세진



손: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하시는데요, 마치 현재 보고 있는 내용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주지만 ‘재현된’ 사실’이거나 ‘허구’입니다. 정말로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요. 특히 <연선 채에 관하여>를 보면서 사실일까 아닐까 궁금했습니다. 

김: <연선 채에 관하여>는 모두 진짜예요.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터뷰한 사람들도 모두 실제 인물들입니다. 시나리오를 가지고 재연 배우가 연기를 하는 것과 실제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그런데 사실 작품을 만들 때는 지나간 ‘사실’에 대한 기억을 진술하는 상황을 ‘허구’처럼 보이게 만들고 싶었어요.

장편 상업영화 현장 편집 감독으로 일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에요. 개인과 집단이 대립했을 때 개인이 직면하게 되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상황의 추후 기록에 관한 비디오 작업이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촬영을 할 때였고 위험한 촬영이 많았어요.그러다 보니 집단의 규칙이 강조됐죠. 안 그러면 다칠 수도 있으니까. 그 일이 있고 일 년쯤 지난 후에 인터뷰를 찍기 시작했는데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때 상황과 모두 다르게 기억을 하고 있고 그때와는 다른 태도로 그 상황을 이야기했다는 거예요.


연선, 채에 관하여, 가변 채널 비디오, 41분46초, 2005-2006년 ⓒ 김세진
연선, 채에 관하여, 가변 채널 비디오, 41분 46초, 2005-2006년 ⓒ 김세진



손: 실제 이야기인데 허구처럼 보이고 싶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다큐멘터리를 선택했을 때는 사실임을 강조하고 싶어서 그 기법을 사용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김: 기본적으로 렌즈를 들이대는 순간 ‘사실’은 결국 사라집니다. 편집되는 거니까요. 편집은 어떤 형태로든 현실의 조작인 셈이에요. 실제 일어난 일, 그것에 대한 진실은 다른 맥락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다큐멘터리를 표현의 매체로 선택했다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진실에 대한 고려 때문이 아닐까요? 


손: 그러면 본인도 진실을 강조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 기법을 이용하나요?

김: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 경우는 주로 실제 주변 현실의 이미지를 가져와서 사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세트에서 찍을 수도 있고 연출된 이미지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저는 주로 직접 실제 상황이나 풍경을 찍어서 작품의 재료로 사용합니다.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그 간극이 만들어 내는 공간과의 교감이 아주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손: 좋아하는 영화, 영향을 받은 감독이 있다면요?

김: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퍼니 게임을 만든 감독이에요. 초기 작품 중 폭력의 3부작으로 알려진 작품들을 인상 깊게 봤어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봤을 때 하네케의 작품을 떠올렸지요. 하네케 작품에도 역시 현실과 허구 사이에 결코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이 있어요. 그럼으로써 관객들에게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게 하지요.

어떻게 저런 걸 찍을까 싶을 정도로 잔인한 장면도 많은데 한 가정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허구적 – 그러나 사실에 기반한 – 사건을 무덤덤하게 보여 줍니다. 3부작을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런데 그게 현실 아닌가요? 현실이 그렇게 지독하고 답답한 면이 있는 건데, 요즘에는 인터넷의 맛집, 요리 블로그 같은 가상현실과 같은 매체를 보면서 잠깐 그런 현실을 잊는 것 같아요.


야간 근로자, 가변 채널 비디오, 6분53초, 2009년 ⓒ 김세진
야간 근로자, 가변 채널 비디오, 6분 53초, 2009년 ⓒ 김세진




손:
어느 인터뷰에서 중편 사이즈의 SF 영화를 작업 중이라고 했는데 언제 볼 수 있을까요?

김: 지금 만들고 있는데 장르적으로 SF라기보다 그냥 비꼬아서 SF예요. 주인공은 과거의 어느 혹성에서 왔어요. 서로 다른 시간대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아이디어죠. 예를 들면 개발도상국가에서 추구하는 미래적 국가상이 동시대의 어떤 개발국이라면, 그들이 살고 있는 시간대는 물리적으로 같지만 그들이 처한 시대적, 사회적 상황에는 시간 차이가 있는 거잖아요? 그러나 어찌 됐든 실제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처해 있는 저마다의 현재예요. 영화 도입부에 설정이 나오는데 주인공은 “과거에서 미래로” 옵니다. 그렇지만 비디오에서 보여 주는 것은 “현재 2012년 내가 살고 있는 런던”의 모습이죠. 사람들이 어쩌면 이게 무슨 SF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손: 일단 주인공이 다른 혹성에서 왔고 시간 여행을 했다고 하면, SF 아닌가요? (웃음) 

김: 한국에 돌아가서 시간 조금 더 생기면 이것을 발전시켜서 상업 영화로 만들어 보고 싶어요.


손: 유학할 곳으로 영국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김: 순수예술은 조금 느린 곳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서 미국보다는 영국을 선택했어요. 느린 속도의 유럽 문화를 경험하고 싶었어요. 미국은 아무래도 소비지향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영국에 와서 좋았던 것은 작품을 하는 데 있어 조금 안정감이 생겼다는 거예요. 내 작품의 구성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과 허구를 오가는 복잡한 플롯이 있는데 그것을 읽어 주는 관객들은 아쉽게도 이곳에서 더 많이 만나볼 수 있었어요. 아마도 우리보다는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월등히 많았기 때문일 거예요.

 

잠자는 태양I, 가변 채널 비디오, 38초, 2012년 ⓒ 김세진
잠자는 태양I, 가변 채널 비디오, 38초, 2012년  ⓒ 김세진

잠자는 태양 II, 가변 채널 비디오, 5분8초, 2012년 ⓒ 김세진
잠자는 태양 II, 가변 채널 비디오, 5분8초, 2012년 ⓒ 김세진




<편집자 주>

1. 레지던시(residency programme): 특정 지역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머물면서 창작 활동을 하거나 문화 체험,
전시 등에 참여하는 프로그램. 보통 예술 분야에서 예술가들의 활발한 교류와 예술 관련 기관 운영자들과의 교류 및 교육
등의 목표를 가지고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작가 소개

 
비디오 아티스트 김세진 작가
김세진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과를,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에서 영상미디어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슬레이드 미술대학 미디어학과 석사 과정 중에 있으며 2012년 올해 여름 졸업을
앞두고 있다.

다수의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1년 영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블룸즈버리 뉴컨템포러리즈 수상, 박건희 문화재단의 제4회 다음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이른바 ‘더’ 개발되었다고 믿어지는 서구 문명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 대한 이야기인
‘자칭’ 사이언스 픽션과 함께 최근작들을 졸업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다.
비디오 아티스트 김세진 작가
ⓒ 손세희


필자 소개 - 손세희

다니던 직장 퇴근 시간이 한동안 다른 회사보다 삼십 분 이른 다섯 시 반인 적이 있었다. (물론 야근을 한 적도 많았지만.)
퇴근 후 친구들을 만나려고 해도 최소 한 시간은 기다려야 했다. 그 시간을 좀 유익하게 때워볼 요량에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왕 배우려면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데서 배우자 싶어 영국문화원을 선택했다. ‘재미없으면 그만두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계속 재미있었다. 그래서 죽 일 년을 넘게 다녔다. 그러다가 영국 유학을 결심.
뉴캐슬 대학교에서 미술관 교육을, 요크 대학교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지금은 런던에 머물면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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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28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2014/03/17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blog.britishcouncil.or.kr BlogIcon 주한영국문화원 2014/03/18 14:4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김세진 작가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시면 작가님의 메일 주소 및 연락처를 알 수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http://sejinkimstudio.wix.com/seji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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