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의 축구칼럼] 세계최고의 축구리그: 프리미어리그 조직과 운영의 우수성 II
FA컵 홈페이지. 2006년부터 4년 예정으로 에너지관련 회사인 이온(E·On)이 스폰서하고 있다.
3. 프로와 아마추어의 만남, FA컵 대회의 활성화
FA컵 대회의 운영방식과 문화적 의의
잉글랜드를 포함한 유럽 축구의 뼈대가 디비전 시스템이라는 얘기는 앞에서 했다. 그렇다면 상위 리그 팀과 하위 리그 팀이 한 합을 겨룰 수 있는 기회는 없는가? 있다. FA컵 대회라는 제도적 장치를 이용하면 된다.
'FA컵'이란 '잉글랜드 축구협회 컵'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축구 협회를 결성하고 대회를 조직하였기에, 초창기에 붙인 이름을 고수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 다른 나라의 FA컵은 각국의 국명을 붙여 구분하는 것이 관례다(예 : 스코틀랜드 FA컵은 스코티시컵, 이탈리아 FA컵은 코파 이탈리아나, 프랑스 FA컵은 꾸뻬 드 프랑스).
유럽 모든 나라의 FA컵 축구대회는 거대한 축제마당이다. 일류 프로팀부터 두메산골 동네 축구팀까지, 참가를 원하는 팀은 모두 참가하여 자웅을 겨루는 대회이기에 참가팀만으로 따지자면 각국의 FA컵은 최대 규모의 축구 대회다. 하위 팀의 참가를 보장해준다고는 하지만, FA컵 대회의 패권은 거의 매번 최상위 리그 소속팀의 차지가 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하위 팀이나 동네 팀이 일류 팀과 동등한 조건에서 맞붙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FA컵은 참가 팀 수가 많은 대회이므로, 시즌 시작 직후인 8월부터 1차 예선을 시작해서 리그 종료 이후인 5월 중순에 결승전을 치른다. 1년 내내 FA컵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식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잉글랜드의 경우, 매년 참가 팀의 숫자는 500팀을 상회한다. 그렇다면 아마추어 팀과 프리미어리그 팀이 완전히 같은 조건에서 대등하게 경쟁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프로 팀이 본격적으로 가세하는 본선 토너먼트에 합류하려면, 세미프로 팀과 아마추어 팀은 험난한 예선 관문을 돌파해야 한다.
FA컵의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세미프로, 아마츄어, 기타 리그 소속의 400여 팀이 예선 토너먼트를 벌여 본선에 진출할 32팀을 추린다. 위 32팀과 1부-2부 리그 소속 팀 48팀이 본선 1회전에서 격돌한다. 여기서 2승을 올리면 본선 3회전 고지다. 본선 3회전(64강)은 관례에 따라 자동 진출한 프리미어리그 및 챔피언십 챌린지리그 소속 팀과 여기까지 살아남은 하위 리그 소속팀들이 본격적으로 어우러지는 험한 관문이다. 매번 추첨에 의해 경기장 및 상대 팀이 정해지는 것도 FA컵의 특징이다. 재수가 좋으면 매 경기를 홈에서 치를 수도 있고, 비교적 손쉬운 상대와 출혈이 적은 전투를 치를 수도 있다.
하위 팀들의 반란
BOX 장원재의 축구 이야기 1: 눈물로 끝난 동화, '2000년 프랑스 FA컵 결승'
전 유럽 축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동화속의 한 판 승부'는 결국 눈물 속에 막을 내렸다. 프랑스 FA컵 81년 역사상 결승전에 진출한 최초의 아마추어 팀인 칼레는 2000년 5월 7일 프랑스 생 드니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최후의 한판 승부에서 전년도 우승팀인 낭트에게 1 대 2로 역전패, 기적 창조 일보 직전에서 대망의 꿈을 접어야 했다.
큰 경기에 명승부 없다는 속설을 반증이라도 하듯, 전반 20분간 양 팀은 지나치리만큼 수비에 치중하며 신중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팽팽한 긴장감만이 감돌 뿐 적막함이 넘치던 스탠드가 일순간에 끓어오른 것은 전반 35분께. 칼레의 주전 공격수이며 슈퍼마켓 직원인 제롬 두티트헤가 페널티에어리어 왼쪽 중간 지점에서 날린 땅볼 슛이 낭트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며 선취골로 이어진 것이다. 전 유럽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칼레의 기세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46분 낭트의 시비에르스키가 수비수 두 명을 젖히고 대각선 일발을 우겨넣은 것. 후반 마지막 20분을 일방적으로 몰리면서도 좀처럼 찬스를 허용하지 않던 칼레는 종료 직전 페널티킥으로 다시 한 점을 빼앗겨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특히 마지막의 페널티킥 상황은 비디오 판독 결과 주심의 오심으로 밝혀져 아쉬움을 더했다.
정원사, 하급 공무원, 학생, 페인트 공들이 주축이 된 칼레의 성취가 유럽인들의 가슴에 여운을 남긴 것은, 그들이 축구를 통하여 지역 주민들을 화합과 축제의 한마당으로 끌어냈기 때문이다. 수용 인원 1,000명 남짓한 경기장에서 평균 관중 300명 정도를 앉혀놓고 플레이하던 이 무명의 팀이 하위 리그 프로팀들을 잡고, 2부 리그의 칸느, 릴, 1부 리그의 스트라스브르 등을 연파하며 4강에 오르고 마침내 전년도 프랑스 리그 챔피언인 보르도마저 연장전 끝에 3 대 1로 물리치며 기세를 올렸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북부의 이 항구도시는 오랜 동면에서 깨어난 듯 활기를 회복하고 이웃 간의 정이 넘치는 따뜻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레스토랑에서, 축구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다.
전 유럽 축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동화속의 한 판 승부'는 결국 눈물 속에 막을 내렸다. 프랑스 FA컵 81년 역사상 결승전에 진출한 최초의 아마추어 팀인 칼레는 2000년 5월 7일 프랑스 생 드니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최후의 한판 승부에서 전년도 우승팀인 낭트에게 1 대 2로 역전패, 기적 창조 일보 직전에서 대망의 꿈을 접어야 했다.
큰 경기에 명승부 없다는 속설을 반증이라도 하듯, 전반 20분간 양 팀은 지나치리만큼 수비에 치중하며 신중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팽팽한 긴장감만이 감돌 뿐 적막함이 넘치던 스탠드가 일순간에 끓어오른 것은 전반 35분께. 칼레의 주전 공격수이며 슈퍼마켓 직원인 제롬 두티트헤가 페널티에어리어 왼쪽 중간 지점에서 날린 땅볼 슛이 낭트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를 통과하며 선취골로 이어진 것이다. 전 유럽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칼레의 기세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일단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다. 46분 낭트의 시비에르스키가 수비수 두 명을 젖히고 대각선 일발을 우겨넣은 것. 후반 마지막 20분을 일방적으로 몰리면서도 좀처럼 찬스를 허용하지 않던 칼레는 종료 직전 페널티킥으로 다시 한 점을 빼앗겨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특히 마지막의 페널티킥 상황은 비디오 판독 결과 주심의 오심으로 밝혀져 아쉬움을 더했다.
정원사, 하급 공무원, 학생, 페인트 공들이 주축이 된 칼레의 성취가 유럽인들의 가슴에 여운을 남긴 것은, 그들이 축구를 통하여 지역 주민들을 화합과 축제의 한마당으로 끌어냈기 때문이다. 수용 인원 1,000명 남짓한 경기장에서 평균 관중 300명 정도를 앉혀놓고 플레이하던 이 무명의 팀이 하위 리그 프로팀들을 잡고, 2부 리그의 칸느, 릴, 1부 리그의 스트라스브르 등을 연파하며 4강에 오르고 마침내 전년도 프랑스 리그 챔피언인 보르도마저 연장전 끝에 3 대 1로 물리치며 기세를 올렸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북부의 이 항구도시는 오랜 동면에서 깨어난 듯 활기를 회복하고 이웃 간의 정이 넘치는 따뜻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거리에서, 카페에서, 레스토랑에서, 축구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었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20년 전의 스타플레이어가 무명의 산골 축구팀 감독 겸 선수로 복귀하여 마지막 열정을 뿜으며 그라운드를 내달리는 장면도 FA컵 축구대회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즐거움이다. 그렇기에 FA컵 축구대회는 축구를 매개로 하여 역사와 문화와 민초들의 삶이 어우러지는 거대한 잔치판이요, FA컵 결승전은 한 해의 축구시즌을 결산하는 흥겨운 굿판이 벌어지는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FA컵 결승전에는 유력한 왕족이나 국가원수가 반드시 참석하고, 평소에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벤치를 지키는 감독들도 이날만은 반드시 정장을 입고 가슴에 꽃을 매달고 경기에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1946년부터 매년 가을 전국축구선수권대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 대회는 국내의 실업 팀, 대학 팀, 군 팀 등 성인 축구팀들이 모두 참가해서 그해 한국 축구의 실질적인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로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1983년 프로축구가 출범하고, 전국축구선수권대회는 아마추어 팀들만 참가하게 됨으로써 대회의 의미가 점차 퇴색하였다. 이 때문에 프로와 아마추어 팀을 통틀어 한국 축구의 최강팀을 가리는 FA컵을 창설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런 열망에 힘입어 드디어 1996년부터 대한축구협회 주최로 FA컵 축구대회가 시작되었다. 1996년에 열린 제1회 대회에서 포항 스틸러스가 우승하여 초대 챔피언에 등극하였고, 그 후 전남 드래곤즈, 안양 LG, 천안 일화, 전북 현대, 대전 시티즌, 수원 삼성이 차례로 우승컵을 차지했다. 특히 2001년 대전 시티즌은 K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했으나 FA컵에서 우승컵을 안아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FA컵 우승팀에게는 K리그 우승팀과 함께 이듬해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한국 대표로 참가할 자격이 주어진다.
대한축구구협회(2006), 'FA컵 소개 : 도전과 이변의 무대', <2006 하나은행 FA컵 준결승/결승 프로그램>, 서울, KFA.
문제는 이러한 한국 FA컵이 팬들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 인용문에 잘 드러나 있다.
국내 프로와 아마추어 가운데 왕중왕을 가리는 FA컵. FA컵의 취지와는 맞지 않게 8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은 다분히 썰렁했다. 본부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멀리서도 손으로 일일이 헤아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날 공식 관중 집계는 '1,020명',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나 취재진 모두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눈치다. 그나마 골대 뒤편에 자리한 K리그 4개 팀 서포터스의 열띤 응원과 대형 플래카드마저 없었다면 '고요한 들판의 공놀이'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 문제는 경기 시간과 사전 홍보 부족, 몰지각한 행정이었다. 평일 오후 4시 경기는 학생과 직장인 등 모든 축구팬들의 발걸음을 경기장으로 옮기기에는 버거웠다. 수업 및 근무시간과 경기장 이동 거리를 생각하면 사실상 관중 동원을 무시한 처사였다. 사전 홍보도 없었다. … 지난 8월 12일 FA컵 8강 서울 대 수원전, 상암벌에는 3만 8,533명의 구름 관중이 찾았다. 팬들의 접근이 용이한 오후 7시에 열렸으며 'K리그 최대 라이벌' 서울과 수원이 맞붙는다는 대대적인 홍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양 팀 선수들 역시 경기 내내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치며 이에 화답했다. 12월 3일 오후 2시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수원 대 전남전, FA컵 결승전의 일정과 대진은 모두 확정됐다. 다시 한 번 상암벌을 축구 열기로 물들이게 하려면 남은 한 달간 협회와 각 구단들, 언론사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절실한 상황이다(이상철, 2006).
프로스포츠의 흥행성공을 위한 핵심전략 가운데 하나는 경쟁 상품과의 정면 대결을 슬쩍 비켜가는 일정조정(캘린더 조정)이다. FA컵의 독자적 권위를 살리고 팬들의 흥미를 끌어 모으기 위해 결승전을 프로야구 준 플레이오프 일주일 전으로 앞당기는 것은 어떨까. 10월 중순부터 2주 단위로 FA컵→프로야구→프로축구의 우승자가 가려지는 '챔피언의 가을'을 하나의 관행으로 정착시킨다면, 프로스포츠와 TV 그리고 팬들 모두를 위한 더없는 서비스가 될 것이다. 2001년과 2002년에 잠깐 시행했던 고교랭킹 1~3위 팀에게 참가권을 주는 방안도 FA컵의 활성화를 위해 다시 한 번 고려할 필요가 있다.
BOX 장원재의 축구 이야기 2: 한국판 동화, "포항시청과 극동철강의 대모험"
2001년 11월 축구계의 최대 화두는 포항시청 축구 클럽 대 울산대의 FA컵 3회전 경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마추어 팀이 FA컵 본선에 오르려면, 무엇보다도 험난한 지역예선을 먼저 통과해야 했다. 험난하다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지역 예선이 녹다운 방식으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한 번의 패전은 곧 탈락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포항 시청 축구클럽은 FA컵 1회전에 오르기까지 적어도 7~8연승을 기록했을 것이며, 본선 1·2회전 상대였던 충북대, 용인대와의 경기를 포함하면 FA컵에서 무려 10연승에 가까운 성적을 올린 셈이다. 포항시청 클럽이 나름대로 열심히 훈련을 해왔고, 엄청난 승운과 행운이 따라주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비등록 팀이 천신만고 끝에 본선무대에 올라 등록 팀과 한 합을 겨룬다는 설정은 본질적으로 동화나 무협지, 모험담과 흡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포항시청 클럽 대 울산대의 경기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기는 울산대의 3 대 0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패자의 얼굴에서 후회 없이 싸웠다는 당당함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승리지상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를 적시는 한 줄기 소낙비였다.
FA컵 대회가 창설되기 이전에도, 비등록 팀이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있었다.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한 전국축구선수권대회와 대통령배 축구선수권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1977년 제32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극동철강은 8강에 오르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극동철강은 조 예선에서 상업은행을 1 대 0으로 잡고, 고려대에 0 대 1로 승점을 내줬으나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극동철강은 16강전에서 국민은행과 2 대 2로 비긴 뒤 PK승을 거두고 전진을 계속했으나, 준준결승에서 중앙대에 0 대 1로 패해 눈물을 삼켰다. 당시 상업은행은 강병찬, 박상인 등 두 명의 국가대표를 보유한 실업축구 중상위권의 팀이었다. 극동철강이 어떤 연유로 축구계에서 영영 모습을 감추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혹시 1979년 3월 제28회 대통령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하여 성균관대를 1 대 0으로 꺾고 한일은행에 1 대 2로 패해 예선 탈락한 또 다른 비등록 팀인 동양기계가 극동철강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극동철강을 응원하던 팬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2001년 11월 축구계의 최대 화두는 포항시청 축구 클럽 대 울산대의 FA컵 3회전 경기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마추어 팀이 FA컵 본선에 오르려면, 무엇보다도 험난한 지역예선을 먼저 통과해야 했다. 험난하다는 표현을 쓰는 까닭은 지역 예선이 녹다운 방식으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한 번의 패전은 곧 탈락을 의미한다는 뜻이다. 포항 시청 축구클럽은 FA컵 1회전에 오르기까지 적어도 7~8연승을 기록했을 것이며, 본선 1·2회전 상대였던 충북대, 용인대와의 경기를 포함하면 FA컵에서 무려 10연승에 가까운 성적을 올린 셈이다. 포항시청 클럽이 나름대로 열심히 훈련을 해왔고, 엄청난 승운과 행운이 따라주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비등록 팀이 천신만고 끝에 본선무대에 올라 등록 팀과 한 합을 겨룬다는 설정은 본질적으로 동화나 무협지, 모험담과 흡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포항시청 클럽 대 울산대의 경기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기는 울산대의 3 대 0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패자의 얼굴에서 후회 없이 싸웠다는 당당함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승리지상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를 적시는 한 줄기 소낙비였다.
FA컵 대회가 창설되기 이전에도, 비등록 팀이 출전할 수 있는 대회가 있었다.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한 전국축구선수권대회와 대통령배 축구선수권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1977년 제32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극동철강은 8강에 오르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극동철강은 조 예선에서 상업은행을 1 대 0으로 잡고, 고려대에 0 대 1로 승점을 내줬으나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극동철강은 16강전에서 국민은행과 2 대 2로 비긴 뒤 PK승을 거두고 전진을 계속했으나, 준준결승에서 중앙대에 0 대 1로 패해 눈물을 삼켰다. 당시 상업은행은 강병찬, 박상인 등 두 명의 국가대표를 보유한 실업축구 중상위권의 팀이었다. 극동철강이 어떤 연유로 축구계에서 영영 모습을 감추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다. 혹시 1979년 3월 제28회 대통령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출전하여 성균관대를 1 대 0으로 꺾고 한일은행에 1 대 2로 패해 예선 탈락한 또 다른 비등록 팀인 동양기계가 극동철강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극동철강을 응원하던 팬의 한 사람으로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4. 짚고 넘어가야 할 산, 리그컵의 허점
처음부터 끝까지 합리적으로 진행되는 듯 보이는 피라미드 시스템에도 한 조각 허점이 존재한다. 잉글랜드의 경우, 폐지냐 존속이냐를 둘러싸고 몇 년째 격론의 대상이 되고 있는 타이틀이 있다. K리그가 벤치마킹한 '리그컵'이 바로 그것이다. 리그컵은 3년 단위로 스폰서가 바뀌므로 타이틀 명칭이 스폰서가 바뀔 때마다 코카콜라컵, 밀키우드컵, 워딩턴컵 등으로 바뀐다. 현재의 명칭은 2003-04 리그부터 스폰서를 맡은 칼링사의 이름을 따서 칼링컵(Carling Cup)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아디다스컵, 하우젠컵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FA컵이 아마추어나 세미프로 팀들을 모두 망라하는 대회인 것과는 달리, 리그컵은 프로 리그에 등록된 팀 들, 다시 말해서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십 챌린지리그, 디비전 1, 2 팀들만이 참가하여 자웅을 겨루는 대회다. FA컵이 토너먼트 단판 승부인 것과는 달리, 리그컵은 매 회전을 홈 앤드 어웨이로 치른다. 홈 앤드 어웨이의 경우 득실차가 같으면 어웨이게임에서 다득점한 팀이 승리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규칙이다.
A팀과 B팀이 경기를 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A팀이 어웨이게임에서 3 대 3으로 비기고 홈게임에서 0 대 0으로 비겼다면 A팀과 B팀의 성적은 2무승부로 똑같지만 적지에서 다득점한 A팀이 승자가 된다. 승패를 나눠가졌을 경우도 '어웨이 골 룰'은 마찬가지로 통용된다. 예컨대 A팀이 홈게임을 1 대 0으로 이기고 적지에서의 경기를 1 대 2로 졌다면, A팀과 B의 성적은 1승 1패, 2득점 2실점으로 동일하지만, 적지에서 다득점한 A팀이 승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리그컵 조직위원회는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어웨이 골 룰을 적용한다. 적지에서 더 많은 골을 넣은 팀에 가산점을 주지 않고, 승점과 득실차가 같은 경우 일단 연장전을 벌인다. 연장전에서도 승패를 가름하지 못하면 비로소 어웨이 골 룰을 적용하여 승자를 가리는 것이다. 홈 앤드 어웨이 경기의 결과가 모두 같아 양 팀 간 우열을 가리지 못한 경우 연장전을 치르고, 전후반 15분씩의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내지 못하면 승부차기로 승자를 가리는 방식은 국제 규정과 리그컵에서 두루 통용되는 규칙이다.
리그컵의 표면적 취지는 FA컵 예선이 펼쳐지는 시즌 초에 프로팀들에게도 주중 경기의 기회를 주자는 것과 하위 리그 팀들에게 상위 리그 팀들과 대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협회나 팀들이 비시즌 동안 축구에 굶주린 팬들을 상대로 시즌 초에 비교적 손쉽게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대회 존속의 동인이다. 이 점이 우리나라의 경우와 다소 차이가 있다. K리그의 리그컵은 기본적으로는 리그 규모가 작기에 참가자들에게 적절한 경기 수를 마련해준다는 목적을 갖는다. 그리고 정규 리그 이전에 열리는 일종의 워밍업으로 기능하는 한편 '우승팀'의 훈장을 하나 더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각 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성격의 대회다. 한국 FA컵이 그에 상응하는 권위를 담보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조별 리그로 치러지는 리그컵은 챔피언의 권위를 삼등분하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우승'의 권위가 떨어지는 일은, 어떤 경우든 프로축구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리그컵은 1993/1994, 1994/199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 팀들이 유럽 대회에서 극도의 부진을 보이면서 존폐 위기에 직면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챔피언스리그에서 터키의 갈라타사라이에게 2년 연속 고배를 들고 프리미어리그 소속 팀들이 3대 유럽 대항전 8강에 단 한 팀도 진출하지 못한 것이 논의의 시발점이다.
앞서 언급한 3 대 3, 0 대 0 무승부의 경우가 갈라타사리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1993/1994 시즌 격돌의 결과다. 그 다음 해에는 갈라타사리가 올드 트레포드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 대 0으로 격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럽 대항전 홈게임 41년 무패의 신화를 깼다.
위기의식을 느낀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한시 기구로 사계의 전문가를 총망라한 '경기력 향상 제도 위원회'를 협회 산하에 두어 2년간의 대대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팀 간 경기 수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많아 선수들이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 점이 유럽 내 클럽 대항전에서 잉글랜드 팀들이 힘을 쓰지 못했던 주요 이유라는 지적이었다.
FA컵에 비해 대회의 성격이 뚜렷하지 않은 리그컵을 폐지하자는 것이 개선 방안의 주요 권고 사항 가운데 하나였으나,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실질적으로 경기 수를 줄일 수 있는 근본 해결책을 선택한다. 이대로 나가다간 모두가 공멸할 수도 있다는 카드로 프로 구단의 엄청난 반발을 압박하며 프리미어리그의 팀 수를 24개 팀에서 20개 팀으로 줄이는 대수술을 단행하였다. 팀 간 연간 경기 수를 여덟 경기 덜어내는 대신 리그컵을 존속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최근 7~8년 사이 챔피언스컵이나 UEFA컵 등이 토너먼트에서 리그제로 바뀐 탓에 상위 팀들의 연간 경기 수는 제도 개선 이전 수준으로 다시 늘어났고, 이들 유력 구단들이 '리그컵은 어떤 면에서는 무의미한 대회'라고 주장하고 있어 이 대회의 존속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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