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의 축구칼럼] 세계최고의 축구리그: 프리미어리그 조직과 운영의 우수성 I


경기영어마을 장원재 사무총장님의 축구칼럼 두 번째 이야기는 영국의 프리미어리그가 왜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로 평가받고 있는지 한국의 K리그와 비교하여 심도있게 알려드립니다. 두 편으로 나누어 연속으로 게재합니다.


영국 축구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영국축구협회 (Football Association)의 홈페이지


1. 유럽 축구의 뼈대, ‘피라미드 디비전 시스템’

산업화의 관점에서 본 ‘리그’의 의미
리그(league)의 사전적 의미는 동일한 규칙 아래 경쟁을 벌이는 참가자들의 연합이다. 리그 참가자들은 내부적으로는 상호 경쟁하지만 외부적으로는 축구라는 상품을 공동으로 제작하는 동업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축구를 산업화하는 데 있어 ‘리그’의 의미는 크다.

유럽 축구 리그의 뼈대는 자체 구장을 가지고 매주 경기에 참가하는 구단들이 상위 리그부터 하위 리그에 이르기까지 수십 팀 단위로 편재되어 있는, ‘디비전 피라미드 시스템(division pyramid system)’이다. 1부 리그부터 2부, 3부, 4부 리그에 이르는 피라미드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매 리그가 연중 리그를 벌이며 각 리그 상·하위 팀이 자리바꿈을 한다. 피라미드 시스템은 경기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상시적으로 유지하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다수의 우수한 선수들을 공급받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이런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채 축구 실력의 향상을 도모하는 일은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의 다른 말이다. 최소한의 시설도 갖추지 않은 채 사람만 닦달한다고 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 축구계가 경기력에 비해 한국 축구를 홀대하는 까닭은 명백하다. 한국 축구 리그가 유럽인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2부리그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3부 4부까지를 망라하는 하위리그까지 조직되어 있는 일본에 비한다면, 한국에서 연중 리그에 참여하는 팀은 프로 구단 14개와 2부 리그 격인 N리그의 11개 구단이 전부다. 유럽식 기준으로 보자면, 한국 축구는 기본시설도 갖추지 못한, 소수에 의한 소수만을 위한 소수만의 리그인 셈이다.

유럽의 경우, 축구가 하나의 산업으로서 그 위치를 확고히 하고 막대한 영업이익을 내기 시작한 시점은 리그의 규모가 급작스레 팽창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잉글랜드의 경우도 리그 결성 초기에 신규진입 희망구단에 대해 여러 가지 특전을 베풀었다. 전체의 파이를 키워 산업규모를 확장하는 방식을 고른 것이다. K리그 신규 참여 구단은 가입금, 발전기금 등 창단자금 이외에 40억 원 정도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신규구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정도의 금액은 수익 창출을 못하는 한국 축구의 현실상 지나치게 높은 진입장벽이다. 반면에 기존 구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지난 20여 년 간 시장의 형성과 유지에 투자했던 금액을 신규참여자들에게 골고루 분담시키는 ‘공평한 처사’다. 따라서 가입금을 내지 않고 리그에 참여하는 구단은 기존 구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종의 무임승차자인 셈이다. 그렇다면, 평행선을 달리는 이들 주장을 한데 묶을 수 있는 묘안은 무엇인가. 리그 규모의 확대가 지상과제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면 다음과 같은 방법도 있다.

미국의 메이저리그 사커는 리그 자체가 하나의 회사처럼 기능하며 개별구단은 한 회사의 독립사업부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움직인다. 방송중계료나 위탁사업 등 수익사업을 전개할 때는 단일 구단이 개별협상에 나서는 것보다 리그 구성원 전체의 위임을 받는 대표기구가 일괄협상을 편다. 이 편이 오히려 개별 구단과 리그 전체의 수익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K리그 가입금 문제가 신생구단 창단의 걸림돌이라면 가입금을 대폭 낮추는 대신 사후에 발생할 이익에 대한 배당률을 기존 구단에 유리하도록 차등화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 대한축구협회 기획실 직원인 차영일 씨와의 인터뷰 중 일부(2005년 12월 19일).

그렇다면 유럽인들이 특별 대접하는 이웃나라 일본의 J리그를 한번 들여다보자. J리그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리그라는 평가는 첫째, 운영체계의 합리성, 두 번째는 시장규모가 유럽 시장을 주축으로 하는 세계 축구시장에 진입 가능한 수준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세계 축구시장은 선수 및 감독의 이적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거대한 무역시장이다. 따라서 거래액 규모도 막대하다. 연간 유럽 내에서 오가는 이적료만을 합산해도 한화로 몇 조 원을 간단히 웃도는 수준이다. 국제 축구시장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지분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확실한 인력을 싼값에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거나 수준 높은 인력을 비싼 값에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가 전자의 경우라면 일본은 후자의 좋은 예다. 유럽이나 남미의 국가들은 수출과 수입을 동시에 수행한다. 말하자면 J리그는 세계 축구산업의 네트워크 안에서 기능하지만 K리그는 아직 그 단계까지 산업화를 이룩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 표준 제도의 도입
J리그의 운영체계가 유럽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합리적이라는 것은 한-일 양국의 축구를 비교하는 데 있어 핵심 쟁점이다. 여기서 ‘합리적’이라는 말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운영체계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잉글랜드는 프로 리그의 역사만 해도 100년이 넘는 세계 축구 행정의 메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프로 리그를 운영해 온 나라답게 축구와 관련하여 축적해놓은 판례법만 해도 상당수에 이르며, 유럽 각국이 잉글랜드 축구를 기본 모델로 하여 프로 리그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는 관광산업이나 영화산업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진 거대한 비즈니스다. 아래의 1994~1998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의 대차대조표를 살펴보면 영국 축구산업의 규모를 추정할 수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의 대차대조표(1994~1998)
회계연도 리그 성적 예산 직원 인건비 이적료 순수입 세전 이익
1994 우승 20,852 9,002 675 2,881
1995 준우승 60,622 13,020 -3,733 20,014
1996 우승 53,316 13,275 1,300 15,399
1997 우승 87,939 22,552 -293 27,577
(단위 : 천 파운드)
자료 : Account Books, Manchester, 1998, Manchester United Co. Ltd.

이러한 인식의 바탕 위에서, 한국 축구를 국제적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럽의 업계가 납득할 수 있는 국제 표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선결과제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축구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잉글랜드는 92개의 프로팀이 있다. 이 말은 자체 구장을 가지고 있으며 축구 이외의 직업을 가지지 않는 전업 선수들(full-time job footballer)을 거느리고 매주 경기에 참가하는 구단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4부 리그까지 수십 팀 단위로 편재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를 프로 리그라 부르며, 5부 리그부터는 넌 리그(Non-League, 리그 밖의 리그)라고 부른다. 프로 리그와 넌 리그 사이의 차이점은 ‘최저연봉제’의 시행 여부다. 프로리그 소속 팀들은 선수들에게 일정수준의 급여를 의무적으로 보장한다는 뜻이다. 프로리그 소속 팀들은 바클레이즈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십 챌린지리그 , 디비전 1, 디비전 2로 나뉘어 각각 홈 앤드 어웨이(home and away) 방식으로 연중 리그를 치르고, 성적에 따라 하위, 상위 서너 팀들이 아래 리그로 혹은 위 리그로 자리바꿈을 한다.

예를 들면 프리미어리그의 하위 세 팀은 무조건 챔피언십 챌린지리그로 탈락한다. 프리미어리그의 경우 우승컵과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놓고 벌이는 상위 팀들 간의 피 말리는 대권 레이스도 흥미진진하지만, 하위 팀들 간에 탈락을 면하기 위해 처절하게 맞부딪히는 생존경쟁 또한 흥미 만점이다. 해마다 전망이 불투명한 위태위태한 레이스를 펼치다가 마지막 경기 결과에 따라 16위, 17위로 가까스로 살아남곤 했던 코벤트리 시티(Coventry City)와 사우스햄튼(Southampton F. C.)의 별명은 ‘생존의 마법사’를 뜻하는 ‘서바이벌 아티스트(survival artist)’이다. 전례로 보자면, 우승팀이 벌이는 축제보다는 살아남은 팀의 선수와 관중이 그라운드에서 한데 엉켜 환희의 노래를 부르는 쪽이 훨씬 더 잔치 분위기를 풍기는 편이다. 우승팀을 결정하는 방식은 철저한 단일 리그제다. 그렇다면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팀 간의 경쟁 포인트는 무엇인가. 각국의 상위 팀들에게 출전권을 부여하는 클럽간의 국제 경기, UEFA(The Union des Associations Europeeennes de Football, 유럽축구연맹)컵 출전권이다. 유러피언 챔피언스 리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UEFA컵의 권위나 이를 통한 경제적 이익도 각 구단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기에 모든 팀들은 최후의 한 순간까지 필승 의지를 다지며 ‘한 골이라도 더’의 정신으로 최선을 다한다. 유럽 축구에 관한 한 어떤 경우에도 승부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K리그도 2007년부터는 단일 리그를 시행했는데, 이전처럼 전·후기를 나누고 전기-후기 우승팀, 위 두 팀을 제외한 종합성적 차상위 두 개 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는 방식은 유럽의 기준으로 보자면 다소 문제가 있는 제도다. 1년 내내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한 ‘진정한 승자’가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K리그의 6강 플레이오프 제도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다소간 문제가 있다.

업다운 시스템
피라미드 시스템이 갖는 가장 큰 묘미는 업다운(up-down) 시스템이다. 업(up)이란 상위 리그 진출을 뜻하고 다운(down)이란 하위 리그로의 강등을 말하는데, 정식 명칭은 ‘promotion-relegation system’이다. 성적에 따라 노는 물(?)을 바꿔버린다는 매정함, 실력에 따라 본질적인 대우 자체가 달라진다는 냉혹함을 동시에 담고 있다. 상위 리그 소속이냐 하위 리그 소속이냐에 따라 팬들과 언론의 관심, 수익 창출의 가능성 등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므로 상승과 하강은 구단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팀 운영과 수익 창출의 사활이 걸린 일대사건이다. 그 구체적인 시행세칙은 어떻게 운영되는가. 다시 잉글랜드의 경우로 돌아가보자.

챔피언십 챌린지리그의 우승, 준우승팀은 자동적으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게 된다. 3~6위, 4~5위 팀은 홈 앤드 어웨이로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을 치르고, 이 경기의 승자 두 팀이 단판 승부로 프리미어리그 막차 티켓의 향방을 결정짓는다. 이 가운데 가장 큰 화제를 모았던 사건은 1999/2000 시즌의 플레이오프다.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서 분루를 삼킨 입스위치(Ipswich F.C.)가 과연 프리미어리그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와 이탈리아의 인터밀란(Inter Milan)과 제휴를 맺은 찰튼 애슬래틱(Charlton Athletics)이 시즌 초에 호언한 대로 디비전 1의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가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입스위치는 3년 연속 3위를 차지하고 플레이오프에서 하위 팀들에게 덜미를 잡힌 ‘억세게 재수 없는 팀’이고, 찰튼 애슬래틱은 선수들의 자유 이동을 통한 양 팀 성적의 동반 상승을 꾀한다며 1999년 5월 인터밀란과 전략적 제휴를 체결하였다. 결과적으로 입스위치는 2위로 프리미어리그에 직행하였으며, 찰튼 애슬래틱은 엄청난 승률을 올리며 ‘우승팀’의 타이틀을 차지하였다.

설기현 선수가 몸담고 있었던 레딩은 1993/1994 시즌에서 프리미어리그 승격을 놓고 볼튼 원더러스(한때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가 몸담았던 팀)와 맞붙었다. 레딩이 세 골을 먼저 넣고 앞서가다 3 대 4로 역전패한 이 경기는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부 10선으로 손꼽힌다.

잉글랜드 축구계의 오랜 전통은 5월 첫째 주 토요일에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FA컵 결승전을 치르는 것이다. 5월 둘째 주 주말에 플레이오프 결승전을 치르는 것도 역시 오랜 관례 가운데 하나다. 금요일에는 디비전 1로 올라가는 단판 승부를, 토요일에는 챔피언십 챌린지 리그로 진입하는 단판 승부를, 그리고 일요일에는 그해 시즌을 총결산하는 마무리 경기로 프리미어리그 진입을 위한 단판 승부가 펼쳐진다.

풋볼 컨퍼런스: 5부 리그에서 10부 리그까지
프로 리그 밑으로는, 400여 팀이 참가하는 풋볼 컨퍼런스(Football Conference)라고 불리는 세미프로 리그가 조직되어 있다. 예닐곱 명의 전업 선수를 보유한 프로팀에 가까운 구단부터 일당제 선수들로만 구성된 영세한 구단에 이르기까지, 세미프로팀들은 각각의 재정 상태에 따라 그 운영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세미프로 선수란, 축구에서 나오는 수입만으로는 생계유지가 불가능하기에, 경찰관, 보험회사 직원, 우편배달부, 채소장수, 배관공 등 여타 다른 직업에 종사하며 공을 차는 선수들을 말한다.

풋볼 컨퍼런스의 1부 리그(5부 리그, 정식 명칭은 컨퍼런스 내셔널 Conference National)는 스폰서 회사의 이름을 따서 블루 스퀘어 프리미어 (Blue Square Premier)라고 부른다. 런던 내 한인촌인 뉴몰든, 킹스톤(New Malden, Kingston)을 본거지로 하고 있으며, 한국의 구상범 선수(1990년 월드컵 대표, 현 인천대 감독)가 은퇴 이후 잠시 몸을 담기도 했었던 킹스토니안 구단(Kingstonian FC)이 바로 이 리그 소속이다. 블루 스퀘어 프리미어와 디비전 2(4부 리그) 팀 간에도 상승과 추락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프로팀 간의 이동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 블루 스퀘어 프리미어의 우승팀은 축구협회로부터 구단의 재정상태, 경기장 시설기준 검사를 받은 뒤 합격 판정을 받으면 프로 리그로 진입하고, 디비전 2 최하위 팀이 세미 리그로 내려온다. 합격 판정을 받지 못하면, 그해 블루 스퀘어 프리미어와 디비전 2간의 이동은 없다. 세미 프로 리그는 하위로 내려갈수록 동일 지역 내의 팀들 간에 벌어지는 지역 리그의 성격을 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동거리를 줄이고 운영경비를 가능한 한 적게 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전국 리그인 5부 리그(블루 스퀘어 프리미어) 밑으로는 단일 리그로 6부 리그가 있는 것이 아니라, 6부 리그 동부 리그, 6부 리그 서부 리그 등으로 네 개의 리그가 나눠져 있다. 시즌이 끝나고 각 지역 리그의 우승팀끼리 모여 상위 리그로의 승격을 위한 혈투를 벌인다. 6부 리그 이하 10부 리그까지가 이런 구도로 편재되어 있는데, 이들 역시 성적에 따라 추락과 상승을 거듭하는 것은 물론이다.

2007년부터 시행한 K3리그도 축구 열기가 높은 소도시 연고팀을 중심으로 한 지역별 권역 리그를 지향한다. 수도권, 중부권, 영남권, 호남권을 나누고 각각의 권역에 8개 팀 이상을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5년간의 시범 운영을 거쳐 2012년부터는 N리그와의 승강제를 실시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김종윤, 2008 : 4).

리버풀 더비: 리버풀FC의 안드레아 도세나와 에버튼FC의 루이스 사하가 서로 헤딩볼을 차지하려는 모습
- 2008년 9월 27일 에버튼의 홈구장인 구디슨 파크

2. 한국형 피라미드 시스템이 정착하려면?

그렇다면 왜 피라미드 시스템이 국제 표준 시스템으로 자리를 잡았는가. 피라미드 시스템에는 다음과 같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각 구단의 실력을 가장 정확히 측정하는 방법이다. 1년 내내 대회가 진행되고 이의 누계로 등위를 산정하기에, 요행이나 천운이 끼어들 여지가 그만큼 줄어든다. 하위 리그부터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 상위 리그로 올라가고, 다시 계단을 오르듯 꾸준한 노력을 거듭해야만 성적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벼락출세 가능성의 원천적 차단. 바꾸어 말하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승자가 결정되는 것이다. 구단 차원에서는 벼락출세가 불가능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이적이나 임대를 통해 얼마든지 깜짝 출세가 가능하다는 점도 묘미다. 제도적 보수주의와 유동적 다이나미즘의 절묘한 조화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피라미드 시스템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제도이다. 단단히 다져진 하부구조는 선수의 육성-발굴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경기 내적인 장점 외에 축구인들의 취업 기회 및 축구 관련 산업 종사자의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축구 자체가 하나의 산업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데 그 존재의 의미가 있다. 축구가 기타 연관 업종에 기생하거나 오락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독립 산업으로 존립할 수 있는 토대로 기능한다는 뜻이다.

위의 경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리그의 규모를 결정하는 일은, 우리나라의 여건 즉, 경기라는 상품의 품질 저하를 막고 축구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재투자될 수 있는 균형점을 면밀히 계산해서 결론을 내려야 하는 문제다. 기존 구단끼리의 경쟁을 활성화하고 신규 구단의 시장진입을 유도해야 함은 물론이다. 축구라는 상품은 그 제조방식의 속성상 리그 참가자들의 전체적인 협조가 없이는 제조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앞에서 했다. 모든 참가자와 팬이 기꺼이 납득할 만한 경쟁방식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바른 경쟁방식을 마련하는 일은 산업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승부의 진정성’이 떨어지거나 실력보다는 요행이 우선하는 방식의 리그 운영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외국의 축구 전문가들이 한국 축구의 운영체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총 참가 팀 수가 26팀(K리그 14, N리그 12: 2009년부터 K리그 강원 FC 참가)에 불과한 리그라면, 타이틀의 권위도 그 정도 규모에 걸맞은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팀 수가 적으면 다양한 상품을 제조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다. 팬의 입장에서는 팽팽한 접전도 좋지만 때로는 일방적인 공격 위주의 경기나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다 기습으로 일관하는 경기도 보고 싶은 법이다.

여타 성인 팀, 즉 1년 내내 팀을 운영하는 대학 팀의 경우도 문제다. 2008년 시범실시된 U리그의 참가팀은 10팀. 나머지 60여 팀의 경우, 1년에 다섯 개 대회에 참가하더라도 모두 1회전에서 탈락하고 나면 연간 경기 횟수가 5회에 불과하다는 것인데, 선수들에게나 혹은 팀을 운영하는 주체에게나 이만한 낭비가 없다. 그렇다면 K리그의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묘안이 있는가. 있다. 잉글랜드의 경우, 프로팀들은 거의 모두 각급 도시를 연고지로 한다. 대개는 한 도시가 한 팀을 보유하는 것이 관례지만, 인구·경제력·축구팬 수, 기타 여건 등을 고려하여 두 팀 이상을 보유한 도시도 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시티), 리버풀(리버풀, 에버튼), 버밍햄(아스톤 빌라, 시티), 셰필드(유나이티드, 웬스데이) 등이 그 면면이다. 한 도시를 연고로 하는 두 팀 간의 대결을 로컬더비라고 부르는데, 라이벌 의식이 팽배한 이들 경기는 여타 리그 경기에 비해 언론과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모은다.

우리나라에도 수원(삼성 대 시청), 대전(시티즌 대 한국수력원자력), 인천(유나이티드 대 한국철도), 울산(현대 대 미포조선), 부산(아이콘스 대 교통공사), 창원(경남 FC 대 시청) 등의 잠재적인 로컬더비가 있다. 문제는 서울이다. 인구 1,000만 이상을 보유한 도시에 축구팀은 FC 서울이 유일하다. 이는 프로축구계가 가장 거대한 시장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서울의 축구시장을 개발하는 일은 축구 부흥을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자유경쟁의 원리를 도입하여 복수의 팀을 유치하고 서울에서 벌어지는 ‘프로 경기’의 총량을 늘려야 한다. 아울러 소비자의 선택권, 접근성 등 복지와 편의 신장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영국의 경우를 참고로 해결책을 생각해보자. 영국 축구의 최대 시장은 물론 런던이다. 영국 축구계는 이 최대 시장을 철저히 활용한다. 런던에는 무려 12개의 프로팀이 있다. 이들은 우리로 치면 구 단위의 연고지 개념에 바탕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1960년대의 웨스트햄(West Ham United), 1970년대의 토튼햄(Tottenham), 1980년대의 아스날(Arsenal), 2000년대의 첼시(Chelsea F. C.)처럼 성적과 인기에 따라 런던을 대표하는 얼굴이 바뀌는 것이다. 윔블던(Wimbledon), QPR(Queen's Park Rangers), 밀월(Millwall Lions), 찰튼(Charlton Athletics), 풀햄(Fullham), 크리스탈 팔라스(Crystal Palace), 류튼 오리엔트(Leyoton Orient) 등도 틈새시장을 노려 약진을 멈추지 않는다. 유럽 축구는 리그 참가팀 수가 급증하면서 산업화로 나아가는 토대를 구축했다.

그렇다고 존재하지도 않는 팀을 한꺼번에 무작정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지 않다. 발상을 전환하면, 우리나라에도 실력, 예산, 기타 여건을 모두 충족하며 곧바로 리그 참여가 가능한 팀들이 얼마든지 있다. 현재 대학 축구연맹 산하에는 70개 팀 이상의 남자 대학팀이 존재한다. 서울대, 교원대, 육해공군사관학교 등 순수 아마추어 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수생활을 계속해온 고등학교 축구선수들이 특기자 자격으로 진학하는 사실상의 프로팀이다. 대학 축구연맹이 주관하는 연간 네 개 대회와(춘계연맹전, 대학 축구대회, 추계연맹전, 험멜 코리아배 대학 축구 선수권대회) 시즌 초 N리그 팀들과 토너먼트로 격돌하는 대통령배, 도별 지역예선을 거쳐 출전하는 전국체전, FA컵까지를 모두 합산해도 대학 팀들이 참가할 수 있는 공식 대회는 모두 일곱 개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두 갈래다. 첫째, 대학연맹이 주관하는 연간 400~500여 경기에 유료관중 1,000명을 넘긴 경기가 단 한 경기도 없다는 사실이다. 언론과 방송의 상대적 무관심 속에 경기가 치러지므로 대학 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축구를 통한 홍보효과는 거의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게다가 지방 소도시를 중심으로 대회가 진행되는 탓에 학생들의 현장 응원을 통한 애교심의 고취 등의 무형적 가치도 창출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둘째, 대학 팀끼리 폐쇄적 경쟁을 거듭하는 현행 제도 아래서는 대학 축구의 위상이 애매하다는 사실이다. 프로 지망생들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 팀에 입단하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기에, 대학 스포츠는 근 미래 내에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체육 사이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방치될 가능성이 있다. 연간 수억 원 이상의 예산을 지출하면서도 별다른 이익을 기대할 수 없기에 대학 측의 지원이 언제라도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대학 축구는 순수아마 축구로 방향을 트는 것이 옳다. 그러나 학원 스포츠가 스포츠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고, 축구 전문인력의 수급 통로로 기능하는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대학 축구를 K리그와 N리그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안을 검토해보아야 한다. 서유럽에서는 대학 팀이 프로 리그 안으로 진입한 예가 없지만, 축구 산업화의 발전과정에 있는 동유럽이나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남미의 경우는 대학 팀들이 프로 리그에 참가하여 자웅을 겨룬다. 다음 표를 보자.

국명 팀 이름 시즌 순위
아제르바이잔 Hazar Universiteti Baku 99/00 11
라트비아 Universitate Riga 97/98 6
아일랜드 University College Dublin (UCD) 99/00 11
루마니아 Universitatea Craiova 92/93 3
Universitatea Cluj 92/93 11
Sportul Studentesc Bucuresti(부크레슈티 체육대학) 97/98 17
Politechica Timisoara(티미소아라 공과대학) 97/98 2 부 15 위
리투아니아 Ranga Politechnika Kaunas 97/98 8
칠레 Universite de Chile
Universite Catolica
에쿠아도르 LDU
페루 Universitario    
베네주엘라 University los Andes(FCU-ULA)  

위 표는 유럽 및 남미의 1부리그에 진출한 대학팀의 목록이다. 아일랜드의 UCD나 루마니아의 Universitatea Craiova, Universitatea Cluj, 페루의 대학팀은 거의 1부리그 붙박이 팀이며, 칠레의 두 대학팀과 베네주엘라의 ULA는 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수준이다. 3부리그 이하로 조사범위를 확대하면, 각국의 프로리그에 참가 중인 대학팀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상대적으로 진지하게 팀을 운영하고 예산 규모도 여타 대학 팀에 비해 비교우위를 보이는 고려대, 연세대, 숭실대, 한양대, 건국대, 성균관대, 명지대, 호남대, 울산대 등 10여 팀은 N리그 중위권 정도의 경기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대학팀이 캠퍼스 내에 자체 경기장을 마련하고 홈 앤드 어웨이 경기를 펼치면, 서울 시내의 축구 경기장 수와 시장이 곧바로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는 안암동 녹지 캠퍼스 내에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규격의 인조 잔디 구장을 완공했으며, 건국대학교도 맨 땅이기는 하지만 8,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타디움이 있다. 숭실대학교나 한양대학교 내에도 스탠드가 갖춰진 대운동장이 있어 잔디를 포설하고 라커룸 등의 시설을 일부 보완하면 프로 리그 경기를 치르는 데 큰 문제는 없다.

현행 KFA 규정에 의하면 프로 리그와 N리그는 원칙적으로 천연 잔디 경기장에서 열려야 한다. 단, 2006년 시즌의 김포 할렐루야가 그랬던 것처럼, 별도의 허가를 받아 인조 잔디 경기장을 사용할 수 있다. FIFA 규정은 월드컵 예선의 경우 인조 잔디 경기장에서 A매치를 치를 수 있으나 본선은 전 경기 모두 ‘천연 잔디’에서 개최해야 한다.

목동 경기장과 잠실 주경기장과 보조경기장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길도 열린다. 국립 교육기관인 서울대의 인조 잔디 구장(2006년 완공), 한국체육대학과 한국체육고등학교 구내의 천연 잔디 구장(각각 1면), 태릉 육군사관학교의 천연 잔디 구장에 관중석, 조명시설, 기타 부대시설을 기부 채납하고 이들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등록하고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식 경기를 개최할 때만 임대하여 사용하는 방안도 있다.

K리그든 N리그든 연중 리그로 진입하려면 대학 팀은 물론 지금보다 더 많은 예산을 써야 한다. 당장 경기 수가 30경기 이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1년 내내 합숙시설을 운영하며 팀을 유지하는 대학 팀의 입장에서는, 추가 예산만큼 이익을 실현할 수 있다면 리그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학생 신분으로 프로리그에 참가한다는 사실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으나 다른 직업군(群)의 경우 직장인이 대학생을 겸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제도를 손질하고 70여 개의 대학 팀 중 희망자를 모집하면, 당장이라도 10개 팀 이상의 참가자를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입장에서도 홍보효과의 극대화, 이적료 수입의 확대 등 기대 가능한 이익의 크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 팀 중 일곱 팀의 참가만 유도하면, K리그 N리그 공히 16팀이 경쟁하는 편재를 마련할 수 있다. 열 한 팀의 참가를 이끌어내면, 선진국형 18-18 체제도 곧바로 구축할 수 있다. 프로축구로부터 초등학교 축구에 이르기까지 연중 리그제를 속히 도입하여 기본 구도를 바꾸는 일은 축구시장 자체를 확대하여 경기인들의 고용기회와 수혜 범위를 늘리고 연관 산업의 성장을 지원하며, 무엇보다도 축구실력 자체를 강화하는 지름길이다. 아울러 한국이라는 나라에 쏟아지는 세계 언론의 관심에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답변거리를 마련하는 길이다.

* 세계최고의 축구리그: 프리미어리그 조직과 운영의 우수성 II 가 곧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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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정석 2009/11/04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맘에 드네여.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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